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일본을 벗어나 프랑스에서 영화를 만들었다. 둘의 조합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데 어쨌든 새로운 시도는 상찬받을 만하다. 믿고 보는 고레에다 감독인데 이 영화는 솔직히 기대에 못 미쳤다. 동양과 서양의 어색한 동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에서 파비안느(까뜨린느 드되브)는 성공한 여배우인데 일밖에 모른다. "나쁜 엄마, 나쁜 친구가 되어도 괜찮아. 여배우로 명성을 얻을 수 있다면 만족해." 이런 멘트가 파비안느의 인생관을 말해준다. 당연히 딸과의 관계가 좋을 리 없다. 엄마를 못마땅해하는 미국에서 사는 딸이 가족과 함께 엄마를 찾아온다. 엄마의 자서전 출판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부딪치고 갈등을 겪은 뒤 결국은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어느 가정에서나 있을 법한 평범한 소재를 그런대로 무난하게 풀어낸다. 딸은 과거를 자꾸 소환하지만 인간의 기억은 믿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파비안느도 영화를 찍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하는 딸의 입장이 되어 본다. 내 세계만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면서 딸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파비안느의 캐릭터가 처음에는 속물적이고 이기적으로 보였다. 영화를 같이 본 동료가 말한 대로, 시간이 지나면서 관객도 점점 파비안느를 이해하게 되었다. 누구나 장단점이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인간적 매력이 한 가지씩은 있다. 무능한 사람은 대신 선량하다. 물론 무능이나 선량함의 기준 자체가 모호한 것이지만.
영화 제목에는 '진실'이 나오지만 영화에서 밝혀지는 진실이라야 별것 없다. 서로의 정서적 교류, 따스한 유대감 같은 게 인생을 살아가는 진실이 아닐까. 마지막 장면을 보면 오만한 파비안느도 결국은 작은 것의 소중함을 받아들였을 것으로 보인다.
용산 아이파크 CGV에서 경떠회원과 같이 보았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긴장감이 떨어지고 밋밋하다. 고레에다 감독의 색깔이 별로 드러나지도 않았다. 포스터에 적힌 '올해 최고의 가족영화'라고 하기에는, 글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