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뛰어난 SF 작가가 나오지 않는 것은 안타깝다. 도서관에서 SF 분야의 책을 찾아보면 대부분이 외국 작가의 번역서다. SF는 과학과 인문학의 지식을 배경으로 우주적 상상력이 동반되어야 좋은 작품이 만들어진다. 우리에게도 멋진 SF 작가가 탄생할 정신적 토양은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김초엽 작가의 SF 단편 모음집이다. 작가는 1993년생이니 20대의 촉망 받는 젊은이다. 2017년에 '관내분실'로 한국과학문학상을 받았다.
책에는 여섯 편의 SF 단편이 실려 있다. 그중에서 제일 흥미를 끈 소설은 '관내분실'이다. 미래의 도서관은 죽은 자의 마음을 업로딩한 데이터를 보관하는 곳이다. 사람들은 도서관에 찾아가서 망자를 만나며 추모한다. '마인드'와 접속하면 서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살았을 때 엄마와 불화했던 주인공이 도서관에서 엄마를 찾으면서 화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인드 업로딩 기술을 이용해 망자를 만나볼 수 있는 도서관이라는 개념이 독특하다.
'스펙트럼'은 우주에서 조난 당했다가 외계인과 접촉한 사람의 이야기다. 이 외계인은 인간과 비슷한 외모를 가졌는데 색채를 단위로 하는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그러면서도 서로 교감을 나누며 존중하고 경탄한다. 우주 생명을 잉태한 동일한 씨앗이 있다는 가설이 먼 미래의 어느 땐가는 증명될지도 모른다.
SF를 통해 미래 세계의 테크놀로지를 접하는 게 무척 흥미롭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도 여러 기술과 개념이 등장한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한 인간 배아 디자인, 바이오 해커, 개조 인간, 뇌 분석을 통한 생각-표현 전환 기술, 딥 프리징, 워프 항법, 사이보그 그라인딩 등 다양한 기법이 나온다. 소설의 무대는 웜홀 여행을 할 정도의 뛰어난 기술을 가진 미래 세계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은 현재의 우리와 다르지 않은 호모 사피엔스다. 미래의 인간은 AI, 로봇, 생명공학 기술과 더불어 어떻게 변모할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런 모습도 함께 그려진다면 더 흥미진진할 것 같다.
소설은 여성 주인공이 대부분이다. 그 외 약자나 소수자가 등장하며 자기 삶을 개척해 나간다. 차가운 테크놀로지의 세계를 묘사하면서 인간과 생명에 대한 따스한 시선을 지켜주는 게 고맙다. 젊은 SF 작가의 앞으로의 활약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