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어떻게 죽을 것인가

샌. 2019. 11. 10. 10:36

미국의 의사면서 저술가인 아툴 가완디(Atul Gawande)가 쓴 책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다루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본인의 임상 경험을 토대로 대안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제도뿐만 아니라 환자 개인이나 가족책임 또한 크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바뀌어야 한다.

 

오래 사는 게 행복일까?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야 마다할 리 없겠지만 길어진 수명은 병원 신세를 지고 말년에는 요양원에 수용되어야 하는 게 문제다. 질병과 죽음 사이에 의학적 투쟁의 길이가 길어지고 있다. 과연 생명만을 연장하는 치료가 인간의 존엄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 책은 여러 사례를 들며 반복해서 질문을 던진다.

 

"앨리스 할머니는 사생활과 삶에 대한 주도권을 모두 잃었다. 병원 환자복을 입고 지낼 때가 대부분이었다. 직원들이 깨우면 일어나고, 목욕 시켜 주면 하고, 옷을 입혀 주면 입고, 먹으라고 하면 먹었다. 또한 직원들이 정해 주는 아무하고나 같은 방을 써야 했다. 할머니의 생각과 관계없이 선택된 룸메이트들이 여러 명 거쳐 갔다. 모두 인지 능력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사람은 너무 조용했고, 어떤 사람은 밤에 잠을 잘 수 없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감금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늙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힌 것만 같았다."

 

오래 산다면 우리는 앨리스 할머니처럼 살아야 한다.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때 선택의 여지는 거의 없다. 타인의 도움 없이는 생존이 어려운 상황이 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건 남 얘기가 아니다. 시기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닥쳐올 미래다. 그때가 되면 돌연사한 사람이 부러워 보일지 모른다.

 

현대 요양원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시작한 게 아니었다. 환자가 늘면서 병원 시설이 부족해지자 치료가 힘든 노령 환자를 별도로 수용할 필요가 있었다. 도움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병실을 비우기 위해 짓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 의학이 노인 문제에 대처하는 태도가 이랬다. 오죽하면 요양원을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하겠는가.

 

조사에 의하면 심각한 질병에 걸린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고통을 피하고, 가족 및 친구들과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고, 주변과 상황을 자각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을 잃지 않고, 타인에게 짐이 되지 않고, 자신의 삶이 완결됐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기술에 의존한 의학적 처치는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실패했다. 사람들이 삶의 마지막 순간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성취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줄 의료 복지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무엇보다 요긴하다.

 

일부에서는 요양원을 혁신하는 실험이 실시되었고 소정의 성과도 거두고 있다. 이 책에서도 '어시시트 리빙'이나 '재가 호스피스 케어', 토마스의 요양원 혁신 실험 등이 소개되고 있다. 현재로서  최선의 방법은 질 높은 호스피스 케어의 확대가 아닌가 싶다.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는 재가 호스피스 시스템이 그나마 인간다운 죽음을 지켜줄 수 있을 것 같다.

 

동시에 중요한 것은 질병이 어느 단계에 이르렀을 때 자신을 내려놓을 용기가 환자에게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의학은 단지 생명 연장이 목적이 아니라 환자가 고통을 적게 받으며 의미 있는 마무리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개인의 용기와 양질의 의료 시스템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품위 있는 죽음이 가능하다.

 

뒤표지에 적힌 글이 이 책 내용을 요약해 보여준다.

 

"우리는 모두 태어난 순간부터 나이가 들다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삶의 비극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죽음은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죽음은 비록 우리의 적일는지 모르지만, 사물의 자연스러운 질서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아 있는 문제는 하나, 바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우리는 이 절박한 문제를 의학과 기술의 손에 맡겨 버렸다. 죽음을 일종의 의학적 경험으로 만드는 실험이 시작된 것은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역사가 짧은 셈이다. 그리고 그 실험은 실패하고 있는 듯하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결국 '죽을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인다면 좀 더 '인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다고 말이다."

 

"아름다운 죽음은 없다. 그러나 인간다운 죽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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