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샌. 2019. 10. 31. 11:19

최첨단 물리학 이론인 '루프양자중력'을 설명하며 우주와 만물의 근본을 탐색하는 책이다.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인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가 썼다. 부제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숨 쉬는 이 세계는 무엇으로 존재하는가'이다.

 

물리학의 두 기둥이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상대성이론에서 중력파와 블랙홀을 연구하는 우주론이 발전했고, 양자역학에서 원자물리학의 기초가 닦였다. 그런데 둘은 서로 모순되는 부분이 있다. 상대성이론은 장들이 양자화된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고, 양자역학은 시공이 휘며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따른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는다.

 

양자중력론은 이 둘의 모순을 해결하며 하나의 이론으로 통합하려는 시도다. 그래서 양자 공간과 양자 시간이라는 개념이 도입된다.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야만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다. 양자중력론에서 시공은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틀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고, 고전적 입자나 장도 없어진다.

 

그럼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세계는 오로지 양자장으로만 되어 있다. 공간도 장에 지나지 않으며, 이 또한 양자다. 시간은 이러한 장의 과정들로부터 태어난다. 입자는 양자장의 양자다. 그 자체로 존립하면서 시공 자체를 생성할 수 있는 장을 '공변 양자장'이라고 부른다. 세계는 단 하나의 재료, 공변 양자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는 공간과 시간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그 안에 입자와 물질이 분포하는 무대다. 뉴턴 물리학의 세계관이다. 입자는 실재하는 존재물이며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한다. 그 후에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거치며 세계관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이제 양자중력에 이르러 존재하는 것은 양자장밖에 없다. 모든 것은 장의 일시적인 표현일 뿐이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세계는 실재가 아니다.

 

양자역학도 어려운데 양자중력 이론을 이해하기는 난감하다. 세계를 설명하는 데 시공을 따로 설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도 충격이다. 양자중력은 물리적 세계의 근본 구조를 단순하게 설명해 준다. 물리학자들이 세계의 근본을 탐구해 가는 과정은 경이롭다. 우리는 결과물만 받아보지만 지식이 넓어질수록 존재의 신비 또한 깊어진다.

 

양자중력이 그려내는 세계의 이미지는 대체로 이렇다. "무한이 없는 세계, 최소 크기가 존재해서 그 이하로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한하게 작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공간의 양자가 시공 거품과 섞이고, 세계의 영역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엮어내는 상호적인 정보로부터 사물의 구조가 태어난다."

 

따라서 블랙홀은 무한히 작아질 수 없다. 빅뱅 이전의 우주도 마찬가지다. 140억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양자중력이 설명하는 우주는 빅뱅보다 '빅 바운스(big bounce)로 불러야 한다. 수축하는 우주는 한 점으로 내려앉지 않고 되튀어 마치 우주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팽창하기 시작한다. 현재의 우주가 존재하는 유일한 우주라고 말할 수 없다. 물리 이론이 빅뱅 이전까지 설명할 수 있는 때가 올지 모른다.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Reality is not what it seems]>는 세상의 근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다. 그러나 내용은 어렵다. 이해한다기보다는 물리학의 최전선이 어디인지 감만 잡아도 다행이지 싶다. 부담감 없이 읽으면 지적인 흥분을 느껴볼 수 있는 책이다. '세상은 단순하고 우아하고 아름답다'는 말은 물리학자만의 진술이 아니라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도 공유할 수 있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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