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서거한 뒤 열린 콘클라베에서 베네딕토 교황이 선출되었을 때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베네딕토 교황은 학자 출신의 완고한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있어서 천주교의 미래가 어둡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변화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어려운 것은 종교도 마찬가지다.
교황은 종신제다. 그런데 베네딕토 교황은 도중에 사임했다. 인기가 없었는 데다 측근의 비리로 곤욕을 치르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임은 굉장히 의외의 결단이었다. 베네딕토 교황의 유일하게 훌륭한 업적은 사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 영화 '두 교황'은 베네딕토 교황의 사임 전후에서 시작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새로 선출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 첫 화면에는 사실에 기반한 픽션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두 교황은 가치관이나 성격 등 모든 면에서 상반되는 사람이다. 베네딕토 교황은 원칙을 준수하는 보수주의자이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회 개혁을 추진하는 진보주의자다. 베네딕토가 귀족적이라면, 프란치스코는 서민적이다. 베네딕토는 혼자서 식사하고, 프란치스코는 대중과 어울린다. 한쪽은 클래식을 좋아하지만, 다른 쪽은 팝과 탱고를 좋아한다.
아르헨티나 가톨릭의 추기경이었던 프란치스코는 사표를 내기 위해 베네딕토 교황을 만나러 로마로 간다. 영화의 많은 부분이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의 대화로 되어 있다. 의견이 맞지 않아 충돌도 하지만 둘은 인간적으로 서로 가까워진다. 고위 성직자지만 하느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다는 내밀한 고백도 나눈다. 보수와 진보라는 사고의 차이가 있어도 대화를 통해 공통점을 발견하고 서로 변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장면이 자주 나온다.
베네딕토 교황은 결국 프란치스코를 차기 교황으로 추천하고픈 속내를 드러낸다. 프란치스코 추기경은 자신은 자격이 없다며 극구 사양한다. 젊은 신부로 있을 때 아르헨티나 독재 군부와 얽힌 아픈 사연도 소개된다. 영화처럼 실제 두 분이 만났는지, 베네딕토 교황이 프란치스코 추기경을 밀어주었는지 모르겠다.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영화는 두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를 따스한 시선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두 분을 너무 아름답게 그려서 지나치지 않나 싶을 정도다. 존경은 권위가 아니라 이런 인간적 따스함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두 교황'은 인간의 선한 심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영화다. 응당 종교적 감동까지 따라온다. 반면에 로마 가톨릭의 정치적인 면을 너무 무시해서 동화 같은 느낌도 든다.
영화의 마지막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은퇴한 베네딕토 전 교황을 찾아가서 함께 월드컵 결승전을 보는 장면이다. 각자 조국인 아르헨티나와 독일을 응원하는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픽션이겠지만 무척 재미있는 장면이다. 교황 역을 맡은 두 배우는 실제 교황과 아주 닮아 혼동할 정도다. 참 잘 만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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