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 / 김봄희

샌. 2020. 8. 23. 10:54

후두두둑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 마을버스가 서둘러 정류장에 들어왔어. 사람들은 우산을 접지도 펴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한 자세로 버스에 오를 준비를 했지. 그때 교복을 입은 오빠가 가만히 버스 줄 밖으로 비켜서는 거야. 다른 차를 타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기다리던 사람들이 버스에 다 오를 때까지 한참동안 우산을 높이 펴 들고 서 있더니 맨 마지막으로 버스에 오르는 거야. 그것을 본 만원 버스 속 사람들은 한 발짝씩 자리를 옮겨 오빠가 설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어. 마을버스는 걷는 사람들에게 빗물이 튀지 않게 더 천천히 움직였지. 나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거야.

 

- 세상에서 가장 큰 우산을 써 본 날 / 김봄희

 

 

따스하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누가 공익 광고로 찍어줬으면 좋겠다. 배려와 공생의 가치가 요즈음만큼 필요한 시기도 없다. 눈을 돌리면 어디서나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다.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저주와 악담을 퍼붓는다. 나만 잘 살고 내 가족만 무탈하게 지낸다고 행복해질까? 이기심과 탐욕이 절제되지 못하는 세상 지옥일 뿐이다. 반면에 내 행동으로 천국을 가까이 오게 할 수도 있다. 내가 먼저 타인에게 큰 우산이 되어 주는 일, 선택은 우리의 몫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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