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중용가 / 이밀

샌. 2020. 8. 16. 11:01

이 세상 모든 일은 중용이 제일이거니, 믿고 살아왔다네 - 한데 이상도 하지.

이 '중용' -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네 그려.

자아, 이렇게 되면 무엇이고 중용을 택하여 당황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니 마음은 편하기 그지없는 것.

하늘과 땅 사이는 넓디넓은 것.

읍내와 시골 사이에 살며,

산과 개울 사이에 농토를 갖네.

반은 선비요, 반은 농사꾼일세.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노네.

아랫사람들도 적당히 구슬리네.

집은 너무 좋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으니

가꾼 것이 절반이요, 안 가꾼 것 또한 절반일세.

입은 옷은 낡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새로 장만한 것도 아닐세.

너무 좋은 음식도 먹지 않고

하인배는 바보와 꾀보의 중간내기라.

아내는 너무 똑똑하지도 않고 너무 단순치도 않으니,

그러고 보면 이내 몸은 반 부처에 반은 노자라고 할 수 있을 듯.

이 몸 절반은 하늘로 돌아가고,

나머지 절반은 자식에게 물려주니,

자식 생각도 잊지는 않지만,

죽은 뒤 염라대왕에게 아뢰올 말씀, 이렇게 말할까 저렇게 말할까 궁리도 절반.

술도 알맞게 취하면 그걸로 좋아.

꽃도 반쯤 핀 것이 볼 품은 제일이요,

돛을 반쯤 올린 돛단배가 안전하도다.

보물이 너무 많으면 걱정이 많고, 가난하면 물욕이 생기니 그도 탈일세.

인생은 쓰고도 단 것이니, 깨닫고 보면 그 한가운데 절반 맛이 제일이구나.

 

- 중용가(中庸歌) / 이밀(李密)

 

 

긴 장마에 따른 홍수에 사람만 아니라 가축 피해도 컸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보도가 있었다. 물에 떠내려간 소가 다수 생존했다는 소식이다. 어떤 소는 농장에서 80km나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무인도에서 발견된 소도 있었다. 다른 동물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애쓰다가 결국은 지쳐서 죽는다고 한다. 그런데 소는 물에 저항하지 않고 물결에 몸을 맡긴 채 떠내려가기 때문에 오래 버틴다는 것이다.

 

사람살이도 그렇지 않겠는가. 시류(時流)를 거스르다가는 낭패를 본다. 그저 세월의 물결에 나를 맡기고 둥둥 떠내려가는 게 내가 사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마음 편한 길인지 모른다. 너무 안달복달하지 않고 그렇다고 깊은 산 속으로 도피하지도 않으면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다. 중용의 정신을 철학적으로 따지면 복잡하겠지만 우리 생활인의 중용은 이 정도로 이해해도 무난하지 않을 듯 싶다. 욕심을 삼가면 편안해진다.

 

이 '중용가'는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에 인용된 것인데, 원문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 그리고 작가인 이밀(李密) 또한 중국 명나라 때 살았던 사람이라는데 자세한 정보는 확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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