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로 남에게 베푸는 사람 되지 말아라.
희생하는 사람 되지 말아라.
깨끗한 사람 되지 말아라.
마음이 따뜻해서 남보다 추워도 된다는 생각하지 말아라.
앞서 나가서 매맞지 말아라.
높은 데 우뚝 서서 조롱 당하지 말아라.
남이 욕하면 같이 욕하고
남이 때리면 같이 때려라.
더 욕하고 더 때려라.
남들에게 위로가 되기 위해 웃어주지 말아라.
실패하면 슬퍼하고 패배하면 분노해라.
빼앗기지 말아라.
빼앗기면 천배 백배로 복수하고 더 빼앗아라.
비겁해서 행복해질 수 있다면 백번이라도 비겁해라.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하느님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큰 교회 다녀라.
세상에 나쁜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부끄러운 짓이 있다고 믿지 말아라.
양심과 선의는 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라.
네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 나설 것이라고 생각해라.
너보다 못나고 덜 가진 사람과 가까이 지내지 말아라.
패배자들을 경멸하고 혐오해라.
너에게 기회와 이득이 되는 사람에게 잘 보여라.
항상 그들과 동행해라.
들키지 말아라.
앞에서 못 이기면 뒤에서 찔러라.
지지 말아라.
이기고 짓밟고 넘어서라.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확실하게 줄을 서라.
중도는 죽는다.
약자를 이용해라.
어디서든 페미니스트를 자처해라.
기회주의자들에게 잘 배워라.
위선자들을 조심하되 위선엔 능해야 한다.
너의 유식과 성찰이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게 해라.
무슨 수를 써서든 비싼 밥 먹고 비싼 잠 자라.
좋은 옷 입고 좋은 차 타라.
벗은 거지는 굶고 입은 거지는 먹는다는 말 명심해라.
그러나 겉으로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처럼 보이는 것은 처세에 도움이 된다.
너보다 힘 센 자들에게 인사 잘 하고 다녀라.
세상이 바뀔 거라는 생각 하지 말아라.
더 좋아질 거라는 생각 하지 말아라.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오직 너 하나만 잘 살면 된다.
세상의 정의를 믿지 말고 네 안락의 나침반을 믿어라.
세상에 정의란 없다.
오래 살아라. 명심해라.
- 유언(아들, 딸에게) / 류근
'서서히, 눈치채지 못하게' - 이것이 악마의 술수인지 모른다. 우리는 어떻게 하다 이 지경이 된 걸까? 다들 미쳐서 미친 줄도 모르는 나라가 되었다. 이런저런 걸로 울분을 토하지만,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 안에 내면화된 자본주의의 악령이 아닐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종교는 어디에 있는가? 그마저 맘몬에게 항복한 건 아닐까? 코로나19 속에서 장마가 찾아오고, 잠시 비 그친 사이 이 시를 읽는 아침이 우울하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변덕스런 날씨 / 김시습 (0) | 2020.08.08 |
---|---|
오징어 / 유하 (0) | 2020.08.02 |
중은(中隱) / 백거이 (0) | 2020.07.14 |
미래가 쏟아진다면 / 김소연 (0) | 2020.07.07 |
물 끓이기 / 정양 (0) | 2020.07.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