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성이 게으르고 행동이 굼뜨다. 어려서부터 빠릿빠릿하지 못하다고 부모님이 걱정했는데, 학교생활이야 그럭저럭했지만 군대에 가서는 고생 좀 했다. 훈련받을 때 선착순에서는 맨날 꼴찌여서 기합은 도맡아 받았고, 자대에 가서도 고참한테 어지간히 잔소리를 들었다. 나 같은 졸병을 둔 고참도 무척 답답했을 것이다. 다행히 행정병이라서 그나마 군대 3년을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타고난 성격이 그렇다 보니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활동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가만히 혼자 있는 게 특기다. 책 한 권만 던져주면 종일을 심심치 않게 보낸다. 바깥출입 없이 몇 달이라도 혼자서 재미나게 지낼 수 있다. 사회생활을 하는 데는 단점이지만, 다른 면에서는 남이 갖지 못한 장점이기도 하다.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있다. 코로나 사태로 집에만 있다 보니 고립감이 커져서 나타나는 우울증이다.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는 데서 재미를 찾았다면, 일시에 관계가 끊어지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나와는 상관이 없는 말이다. 솔직히 나는 코로나 전과 후가 별 차이가 없다. 드문드문 만났던 모임이 없어진들 그러려니 할 뿐이다. 오히려 억지로 나가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어 좋은 점도 있다.
이럴 때는 내 성격이 최고다. 부지런한 걸 나무랄 수야 없지만, 사람이 너무 바지런해도 문제다. 그런 사람은 일없이 집 안에 있는 게 감옥 같을 것이다. 사람을 만나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더니, 이제는 사람을 못 만나서 스트레스라고 한다. 대체로 사람들은 진득하지를 않다. 이 기회에 코로나를 핑계로 게을러지고 쉬는 건 어떨까. 과거의 화려한 생활을 그리워할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어쩌면 전에는 보지 못한 새로운 나를 찾을지 모른다.
행복하자면 어느 정도 게을러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적당히 눈을 감고 귀를 닫을 줄 알아야 한다. 이것저것 참견하고 간섭하게 되면 마음의 평화를 어찌 유지할 수 있겠는가. 광화문에 나가 태극기를 흔들며 울분을 터뜨리지 말고, 나라 걱정은 젊은이들에게 맡겨라. 게을러야 몸과 마음의 피로가 풀어진다.
배고플 때 먹고, 잠 올 때 자면 된다. 건강 상식을 주워 모이기 전에 제 몸의 소리를 듣는 게 먼저다. 단것이 당기면 단것을 먹고, 매운 게 당기면 매운 걸 먹으면 된다. 그뿐이다. 삶은 단순하다. 게으른 사람은 억지로 인위적인 것을 따르지 않는다. 살아가는 데 목표 따위가 있을 리 없다.
물론 게으름도 먹고 사는 게 해결된 뒤의 얘기다. 노동을 해서 그날그날 연명하는 사람이라면 게으를 수 있는 자유도 없다. 이런 말을 하는 게 그분들에게는 미안하다. 그러나 유한계급이면서 가만있지 못하고 나대는 사람이 너무 많다. 그들에게는 게으름이 악덕이다. 노인은 어린아이나 젊은이들과는 다르다. 노년은 액셀보다는 브레이크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SNS에서 보면 다들 자신의 부지런함을 자랑하느라 바쁘다. 마치 끊임없이 움직이라고 프로그래밍이 된 로봇 같다. 일면 경탄스럽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가만 있어주는 게 세상에 대해 덕을 베푸는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게으름이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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