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탄(金聖嘆, 1608~1661)은 중국 명말 청초에 살았던 문예평론가였다. 재주가 뛰어났고 활달한 성격에 전통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인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세상을 우습게 여기고 경멸하는 태도 때문에 공맹지도(孔孟之道)를 어겼다 해서 사형을 받았다. 그는 머리가 잘리기 전 이렇게 큰소리 쳤다고 한다. "머리가 잘리는 것은 아플 뿐이고, 가산을 몰수 당하는 것은 부끄러울 뿐이다. 그러나 나 성탄이 뜻하지 않은 일로 그리된 것은 참으로 괴이하도다."
김성탄을 처음 안 것은 오래 전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을 통해서였다. 이 책에서 임어당은 김성탄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 <생활의 발견>에는 김성탄의 글 한 편이 나온다. '행복한 한때에 관한 김성탄의 33절'인데 절에 갔다가 장마로 열흘 동안 갇혀 있으면서 인생에서 유쾌한 순간을 심심풀이로 찾아본 것이라 한다. 다시 읽어봐도 역시 재미있다.
'행복한 한때에 관한 김성탄의 33절' 중 일부
1. 때는 7월의 어느 무더운 날, 태양은 중천에 떠 있고, 산들바람은 잠들었으며, 구름은 한 점도 보이지 않는다. 앞뜰이나 뒤뜰도 마치 난로 속과 같다. 날던 새도 그림자를 감췄고, 온몸에서는 땀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점심 식사를 하려 했으나 무더위 탓에 젓가락을 들 마음조차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돗자리를 가져댜 마당에 깔고 그 위에 벌렁 드러눕는다. 그렇지만 돗자리는 녹녹하고 파리들은 얼굴에 날아와 앉아, 쫓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쯤 되고 보면 나는 도저히 속수무책이다. 그때 갑자기 천둥이 우르르 꽝꽝 울리고 먹장 같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전쟁터로 향하는 대군처럼 당당하게 밀어닥친다. 이윽고 처마에서 빗물이 우르르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땀이 들고 땅으로부터 후덥지근하던 열기도 사라지고, 파리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숨어버렸고, 이제야 비로소 밥을 먹을 수 있게 된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10년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가 갑자기 해질녘에 찾아왔다. 문을 열고 그를 맞이해서, 배를 타고 왔느냐 육로로 왔느냐 묻지 않고, 침대에 눕겠느냐 소파에 앉아서 쉬겠느냐도 묻지 않고, 우선 거실로 가서 조심스럽게 마누라에게 이렇게 말한다. "소동파의 마누라처럼 술을 잔뜩 사다 주지 않을려우?" 그러면 아내는 선뜻 금비녀를 뽑아, "이것을 팝시다."하고 말한다. 우선 사흘 동안은 넉넉히 마실 수 있다는 계산이 앞선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서재 앞의 해당화와 박태기나무를 뽑고, 그자리에 열 포기 스무 포기의 푸릇푸릇한 파초를 심는다. 아, 아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봄날 밤에 정다운 친구들과 잔을 주거니받거니 나누어 어지간히 취한다. 잔을 놓기는 싫지만 더 이상 마시는 것도 괴롭다. 그러자 기분을 알아챈 동자가 열 두서너 개의 큰 폭죽을 담은 바구니를 서둘러 갖고 온다. 나는 탁자에서 일어나 뜨락으로 나가 폭죽을 터뜨린다. 유황 냄새가 코를 찌르고 머리를 자극해서 온 육신이 무척이나 기분 좋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거리를 걷고 있자니 두 명의 불량배가 무언가 심하게 다투고 있다. 얼굴은 벌겋게 피가 끓고 눈에는 분노가 번득여서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와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서로간에 예의는 갖추고, 팔을 쳐든다거나 허리를 굽히며 절까지 하면서, '댁에서는' 이라든가 '댁을',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는 안되겠지요' 라는 등 매우 점잖고 거창한 말을 쓰고 있다. 그 시비는 그칠 줄은 모른다. 그곳으로 갑자기 하늘을 찌를 듯한 건장한 사나이가 팔을 휘두르며 다가와서는 커다란 소리로 "집어치워!"라고 외친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넘치는 물이 출렁이듯이 제 자식들이 옛글을 줄줄 외고 있다. 그것을 차분히 들어본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식사를 마치고 심심파적으로 근처에 있는 가게를 찾아가 사소한 물건을 사려고 한다. 잠시 동안 흥정을 하면서 좀더 값을 깎으려 한다. 좀더 깎으려고 흥정을 계속하지만 점원 아이는 좀처럼 깎아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물건을 소맷자락에서 꺼내어 점원 아이에게 내준다. 그러자 점원 아이는 대뜸 미소를 지으면서 공손하게 인사하며 말한다. "오, 어른께서는 정말 성품이 훌륭하신 분이군요."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식사 후의 무료한 때에 헌 가방을 열고 안을 이러저리 뒤적인다. 그러면 우리집에서 돈을 꾸어간 사람들의 수십 수백 장의 차용증서가 나타난다. 꾸어간 사람 중에는 고인이 된 이도 있고, 또한 살아 있는 사람도 있따. 그러나 여하튼 빚을 갚아줄 가망을 없다. 나는 슬그머니 그것을 다발로 묶어 불을 지피고는 하늘을 쳐다보며 연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바라본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어느 여름날, 모자도 없이 맨발로 문 밖으로 나가서 젊은이들이 물레방아 발판을 밟으며 쑤저우의 민요를 부르는 것을 양산을 쓴 채 듣고 있다. 논의 물은 녹은 백은이나 녹은 흰눈처럼 거품을 일으키며 흘러흘러 물레방아에 의해 퍼올려진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아침에 눈을 뜨자 간밤에 어디서 누가 죽었다고 집안 사람들이 수군수군 이야기하는 눈치다. 나는 대뜸 누가 죽었느냐고 집안 사람에게 묻는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 마을에서 가장 구두쇠로 소문난 영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여름날 아침에 일찍 잠을 깨니 소나무 시렁 밑에서 커다란 대나무를 물통으로 쓰려고 켜고 있는 것이 보인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한달 내내 장마로 지새면서 주정뱅이나 병자처럼 늘 잠만 자자니 이젠 일어나기조차 귀찮다. 그러자 창밖에서 비가 그친 것을 알려주는 새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서둘러 침실을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밀어서 연다. 그러면 햇빛이 쨍쨍 비치고 나무들은 금새 목욕을 마친 듯 신선하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한밤에 누군가 먼곳에서 나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음날 나는 그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 집에 들어가 거실을 보니 본인은 남쪽을 향해 책상에 앉아 무슨 기록인가를 읽고 있다. 내 모습을 발견하자 대뜸 인사를 하고는 내 소맷자락을 당겨 그 자리에 앉게 하고, "때마침 잘 왔네, 자아 이것을 읽어 보게나." 하고 권한다. 그래서 우리는 웃음을 나누며 담벼락 끝으로 석양이 사라질 때까지 즐겁게 담화를 나눈다. 이윽고 친구는 시장기를 느꼈는지 내게 조용히 말한다. "자네도 시장할 테지."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겨울밤에 술을 마시고 있는 동안에 문득 방안이 매우 추워진 것을 느낀다. 창을 열고 내다보니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면서 땅 위에는 이미 10센티 이상이나 쌓이고 있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여름날 오후, 새빨간 큰 소반에 새파란 수박을 올려놓고 잘 드는 칼로 자른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나는 오래전부터 승려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러나 육식을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망설이고 있던 차에 승려가 된 다음에도 마음껏 육식을 해도 무방함을 허락 받았다 치자. 과연 그렇게 된다면 양동이에다 물을 가득히 끓인 다음 잘 드는 면도칼로 삭발을 한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몸의 이상스러운 곳에 약간의 습진이 생겼기 때문에 문을 딱 닫아 걸고 이따금씩 뜨거운 김을 쐬주거나 한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어떤 가난한 선비가 돈을 꾸러 온다. 그러나 얘기를 터놓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면서 화제를 딴곳으로 돌리려고 한다. 얼마나 괴로우랴 싶어 단둘이만 있을 곳으로 데리고 가,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어본다. 그러고 나서 방으로 돌아와 돈을 건네주고, 건네준 다음에 다시 이렇게 묻는다. "자네는 지금 당장 가서 문제를 처리해야만 하겠나, 아니면 좀 더 있으면서 한 잔 나누고 가는 게 어떻겠나?"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여기는 쪽배 안이다. 시원한 바람이 상쾌하게 불어오지만 배에는 돛이 없다. 그러자 대뜸 돛배가 나타나서 바람처럼 빠르게 다가온다. 나는 그 배에 접근해서 갈고리 쇠를 걸려고 한다. 요행히 제대로 걸렸다. 그래서 상대방 배에다 밧줄을 던져 그 배가 끌어주도록 부탁한다. 그러고는 두보의 시를 읊기 시작한다. '푸른빛은 뾰죽뾰죽한 산봉우리를 애처롭게 여기게 하고, 누른빛은 귤과 유자가 달려있음을 알려주네' 하면서 호탕하게 웃기 시작한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나그네가 긴 여행길에서 돌아온다. 정들었던 성문이 보이고 강 양쪽 기슭에서 여자들이며 아이들이 제 나라말을 지껄이고 있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기 때문에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수가 없다. 밤에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면, 아침에 일어난 후에 몹시 우울하다. 그때 문득 생각나는 것은, '잘못했음을 숨기지 아니함은 참회와 같도다'라고 하는 불교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나는 모르는 사람이거나 옛 친구이거나 주변의 사람들 모두에게 스스로의 잘못을 말해준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창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방안에서 꿀벌을 몰아낸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누군가가 날리던 연실이 끊어진다. 그것을 지켜본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초원에서 들불이 일어 타오르고 있다. 그것을 바라본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1. 빚진 돈을 모두 갚는다. 아,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
임어당 선생이 이 김성탄의 글을 인용한 것은 인간의 행복이 관능적임을 보여주는 데 있다. 우리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면, 행복은 감각적이지 유심론자처럼 정신적인 데 있지 않다는 것이다.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다. 소소한 일상의 조각에서 우리는 삶의 기쁨과 환희를 맛본다.
행복을 소극적으로 정의하면 슬픔이나 고통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인생은 고해(苦海)다. 고통의 바다에도 점점이 섬이 떠 있듯, 우리에게 주어진 환희의 순간을 즐겨야 하는 게 옳다.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이 또한 유쾌한 일이 아니냐"를 외칠 수 있는지 자문한다. 일상에서 감지할 수 있는 행복은 수두룩한 게 아닐까. 내가 발견할 수 없는 눈이 없기에, 행복이라는 파랑새는 멀리 날아갔다고 한탄하며 얼굴을 찡그리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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