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물멍과 불멍

샌. 2020. 9. 13. 17:28

친구가 한탄강에 다녀온 사진을 보내주며 '물멍'을 즐기고 왔다고 전해왔다. 처음에는 물멍이 뭔가 싶었으나 '물 보며 멍때리기'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요즈음 젊은이들이 쓰는 조어가 재치 있고 재미있다.

 

물멍은 흘러가는 강물이 제일이다. 흐르는 물소리의 음향효과가 더해지면 귀와 마음이 맑아진다. 강물은 흘러가는 세월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하염없이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무상한 세월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물가에 너무 오래 있으면 우울해질 위험이 있다. 특히 노인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물멍은 적당히 즐기는 게 중요하다.

 

'불멍'이란 말도 있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가족끼리 가는 캠핑이 인기라고 한다. 야외에서 독립적으로 지내니 감염 걱정이 줄어든다. 옛날에는 가족보다 친구끼리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캠핑장은 시끌벅적하고 소란했다. 반면에 가족 중심의 캠핑은 차분하고 오손도손하다.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 놓고 타는 불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이것이 '불 보며 멍때리기'라는 뜻의 불멍이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전에 고향집에 재래식 아궁이가 있을 때 불 때는 건 내 전문이었다. 다른 일에 비해서 쉬운 탓도 있었지만, 그저 불을 보는 게 좋았기 때문이다. 불은 처음에 붙이기가 힘들지 한 번 붙고 나면 적당히 나무만 얹어주면 된다. 춤추듯 타오르는 불꽃이 무작정 좋았다. 나 나름의 불멍이었던 셈이다.

 

초기 인류가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은 거의 백만 년 전이라고 한다. 그때부터 인류의 삶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불은 추위와 사나운 동물의 위협으로부터 나약한 호모 족을 지켜주었다. 맹수가 울부짖는 캄캄한 밤에 불을 피워 놓고 동굴 앞에서 불침번을 섰던 원시인을 생각한다. 불이 꺼지지 않도록 애쓰며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던 그의 눈에 불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을까. 우리가 불멍을 하는 심리의 근저에는 백만 년을 이어 내려온 유전자의 힘이 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원주택을 지으면 누구나 벽난로를 희망하는 것도 유전자가 그렇게 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물멍은 고요하고 불멍은 생기 있다. 물과 불의 특성 차이 탓이다. 물은 차갑고, 불은 따뜻하다. 물은 아래로 흐르고, 불은 위로 솟구친다. 인간의 내면세계에도 물의 성질과 불의 성질이 있다. 둘의 비율에 따라 성격 차이가 나타난다. 한쪽이 너무 승하면 불균형이 생긴다. 이상적인 인격체란 상반되는 두 성질을 잘 조화시키는 사람인지 모른다.

 

물멍과 불멍은 멀어졌지만 집안에서 즐길 수 있는 '하늘멍'도 있다. 하늘멍은 창문으로만 다가가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요즘 같은 가을 하늘은 얼마나 높고 푸른가. 창공에 두둥실 뜬 흰 구름은 바람 따라 어디론가 흘러간다. 장소 불문인 하늘만큼 멍때리기 좋은 대상도 없다.

 

S공고에 있었을 때다. 토요일 오전 수업이 끝나고 퇴근할 때는 꼭 관악산을 넘었다. 학교와 집 사이에 관악산이 있었는데, 간편복에 운동화만 있으면 됐다. 연주암을 지나 과천으로 내려가는 능선은 전망이 탁 트였다. 관악산은 큰 바위가 많았는데, 너른 바위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게 그때 내 생활의 최고 낙이었다. 남쪽에서 김포공항으로 가는 비행기가 쉼 없이 내 얼굴 위로 지나갔다. 무심히 날아가는 비행기에 내 아련한 그리움을 실어 보내면 먼 데서 다시 한 점 비행기가 나타났다. 제대로 하늘멍을 한 시간이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묻곤 했다. 뭘 그렇게 넋을 놓고 생각하고 있느냐고. 내가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그냥 머리가 텅 비면서 꼼짝 않고 가만히 있게 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시간이 불쑥 찾아온다.

 

멍때리기는 마음의 쉼이다. 시달리는 뇌를 휴식시키는 데 멍때리기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쓸데 없는 시간인 것 같지만, 멍때리기만큼 우리 영혼에 소중한 시간은 없다. 채운 걸 비우지 않으면 속에서 썩는다. 종교의 명상도 멍때리기와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멍때리기는 고독 앞에 나를 내어 놓는다. 멍때리기는 인생의 무상(無常)을 체감하는 시간이다. 흘러가는 물, 변화무쌍한 불꽃, 피었다 사라지는 구름에서 나 역시 그렇게 흘러가고 변하면서 사라질 운명임을 바라본.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지만 본질적으로 나는 단독자다. 그런 자각과 함께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누군가 농담 삼아 말했다. "나는 멍때린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이것을 데카르트의 명제만큼 진실로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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