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오늘은 나, 내일은 너

샌. 2020. 10. 31. 20:40

2천 년 전 로마인들의 장례 풍습도 우리와 비슷했다. 다만, 장례식장이 아닌 집에서 장의사의 주관하에 의식을 치렀다. 망자의 입안에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데 필요한 노잣돈으로 동전을 넣었다. 시신은 위생 목적에서 도시 안에서는 화장이나 매장을 할 수 없었다. 로마 시내 밖에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입구에는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Hodie mihi, cras tibi(호디에 미기, 크라스 티비)

 

라틴어인데 우리말로는 '오늘은 나, 내일은 너'라는 뜻이다. 오늘은 내가 관이 되어 들어왔지만, 내일은 네가 관이 되어 들어올 것이니 타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잊지말라는 문구다. 묘지로 들어가던 사람들은 이 문구를 보고 더욱 숙연해졌을 것이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죽는다. 여기서 예외는 없다.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히 살 것처럼 행동한다. 진정으로 죽음을 의식한다면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만약 내가 한 달 뒤에 죽는다는 통보를 받는다면, 오늘은 전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죽음을 전제로 할 때 오늘은 전혀 다른 가치를 갖게 된다.

 

그래서 개선장군에게 'Memento mori(메멘토 모리)'를 외쳐주는 노예가 있었다. 의기양양한 때일수록 '죽음을 기억하라'는 당부다. 'Hodie mihi, cras tibi'와 같은 뜻이다.

 

보통 사람은 죽음이 목전에 다가와서야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후회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평상시에도 항상 죽음을 의식하며 산다는 점이 다르다. 죽음을 의식하면 결코 멋대로 살거나 오만방자할 수 없다.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계절은 이제 늦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곱게 물든 나뭇잎이 앞서고 뒤따르며 'Hodie mihi, cras tibi'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뭇잎은 팔랑거리며 가볍고 경쾌하게 대지로 돌아간다. 순리에 따르는 모습은 고요하고 편안하다.

 

가을은 옷깃을 여미는 때이며 철학자가 되는 계절이다. 우리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삶의 한 과정으로 죽음을 이해할 때 죽음은 결코 단절이나 끝이 아니다. 죽음은 회피하거나 외면할 게 아니라 포근히 껴안아주어야 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사라지고 포근해질 때까지. 이 가을에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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