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청춘을 돌려다오

샌. 2020. 11. 17. 10:34

집에 놀러 온 아홉 살 손주가 나훈아의 '테스 형'을 자랑껏 부른다. 어린아이가 "세상이 왜 이래"라고 하니 웃으면서도 씁쓰레하다. 무슨 뜻인지 알고 그러랴마는, 요사이 아이들은 어른 흉내를 워낙 잘 내니 작은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어쨌든 지난 추석 콘서트 이후 나훈아의 인기는 다시 치솟고 있다.

 

나훈아의 노래 중에 '청춘을 돌려다오'가 있다. "청춘을 돌려다오 젊음을 다오 흐르는 내 인생에 애원이란다"로 시작하는 나훈아의 대표곡 중 하나다. 영상을 보면 무대에 꿇어앉아 통곡하듯 이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실제로 '청춘을 돌려다오'라고 호소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청춘으로 돌아가서 힘든 인생을 또다시 살라고, 라며 고개를 저을 사람이 더 많을 것 같다.

 

청춘이 청춘의 아름다움을 과연 즐길 수 있을까? 공기 속에서는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 청춘 시절에는 청춘의 귀함을 알기 어렵다. 나에게 청춘은 번민과 좌충우돌의 연속이었다. 어리석음에서 빚어진 추태, 낯 뜨거운 실수도 잦았다. 그래서 청춘이 아름답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의 말로 쉽게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결코 청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지금의 살인적 경쟁 시스템 안에서의 청춘은 더욱 힘들고 괴롭다. 청춘의 사망률 1위는 자살이다. 그런데 청춘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를 실천할 요량인가. 못 해 본 연애를 실컷 해 보겠다는 것인가. 혈기방장한 젊음의 에너지를 어디에 쓰려는가. 혹 이웃과 연대해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겠다는 뜻을 품어보기라도 했는가.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라는 가사의 흥겨운 노래가 있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 '사랑'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한다. 남녀 사이의 연애만 사랑인가. 꽃, 하늘, 시, 고독 등 사랑의 대상은 주변에 많다. 그렇게 바꾸어 생각하면 이 노래가 내 취향에도 딱 맞게 들린다. 노래는 노래로 즐겨야겠지만, 그래도 나이 타령만은 사양하고 싶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각각의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다. 청춘은 청춘대로 노년은 노년대로 나름의 멋과 아름다움이 있다. 각 시절이 주는 혜택을 즐기면 충분한 게 아닌가. 나이 들면서 잘 익어가고 원숙해진 사람이라면 "청춘을 돌려다오"라고 떼를 쓰지는 않을 것이다. 젊었을 때는 어서 빨리 나이 들어서 지혜롭고 존경받는 어른이 되길 소원했을지 모른다. 어느 경우나 환상을 좇고 있을 뿐이다.

 

나는 청춘에 대한 미사여구를 믿지 않는다. 돌아보건대 내 청춘이 초록색으로 반짝였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다시 청춘으로 돌아간다고 제대로 살아낼 수 있을까? 똑같은 재탕이겠지, 별수가 있겠는가.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손사래를 치며 답할 것이다. "노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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