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에 한 조사 결과가 보도되었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에서 세계 주요 14개국의 국민을 대상으로 9개 항목(기후변화, 감염병, 테러리즘, 사이버 공격, 핵무기 확산, 경제 불안, 세계 빈곤, 국가 간 갈등, 난민)이 국가에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조사했다. 이중 5개 항목에서 한국의 걱정 정도가 1위를 차지했다.
예를 들면, 한국은 감염병 걱정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였다. 감염병 확산이 국가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한국은 89%나 되었다. 반면에 독일 55%를 비롯해 서구 각국의 평균은 60%대였다.
세계 경제에 대한 걱정도 한국이 제일 높았다. 세계 경제 현황이 국가에 위협이라고 답한 비율이 한국은 83%로 1위였다. 2위가 스페인으로 76%이고, 전체 평균은 50%대였다.
핵무기 확산을 중대한 위협으로 보는 응답은 일본이 87%로 가장 많았고, 우리나라는 79%로 뒤를 이었다. 전체적으로 모든 항목에서 한국인은 세계인들보다 걱정하는 비율이 월등하게 높았다.
코로나의 경우 우리나라가 조사 대상국 가운데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가장 적지만 걱정은 가장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걱정이 코로나 확산을 막았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지나친 걱정의 측면이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경제가 다른 나라에 비해 두드러지게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언론이나 일부 세력에서 금방이라고 망할 듯 위기의식을 조장한다. 사실이 그렇지 않음에도 '경제 위기'는 우리가 늘 껴안고 살고 있다.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며 팩트에 기반해서 우리와 세계를 살필 필요가 있음을 절감한다.
근심 걱정이 많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불안과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심리의 근저에는 지나친 경쟁 사회가 낳은 폐해가 아닌가 싶다. 남보다 앞서고 잘 나가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세상을 편하게 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는 경쟁을 하면서 남과 비교하는 데 익숙하고 길들여져 있다. 잘나가는 동료를 보며 열등감에 젖는다. 남이야 어떻든 나는 내 식대로 산다는 당당한 자존감이 부족하다. 또 하나는 자식에 대한 애착이다. 내 나이대에서 생기는 걱정 중 하나가 자식 문제일 것이다. 성인이 된 자식을 독립시키지 못하는 부모는 아마 한국이 으뜸이 아닐까. 사랑으로 포장된 집착이거나 자기애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심리 구조를 갖게 된 원인은 권위주의 교육 탓이 제일 크다.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가정환경도 한몫을 했다. 내가 과거를 돌아볼 때 제일 반성하는 부분이다. 권위적 풍토에서는 인간의 자존감이 자랄 수 없다. 자존감이 약한 인간은 힘센 권력에 굴종하고 남과 비교하는 데서 우월감이나 열패감에 젖는다. 쓸데없는 근심 걱정의 포로가 된다.
우리 세대는 이미 어찌할 수 없지만, 젊은 세대는 제대로 키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학교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 그러나 교육 개혁에 대한 담론은 아직 싹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자나 깨나 먹고사는 문제다.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이런 걱정은 단순히 나의 노파심일까. 그러고 보니 나 역시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젊을 때는 경쟁하며 비교하는 데 시달리다가, 늙어서도 근심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가련한 인생이 되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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