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랑탕 랜선 트레킹(4)

샌. 2021. 3. 31. 07:49

오늘부터 본격적인 랑탕 트레킹의 시작이다. 랑탕 계곡의 존재는 1940년대에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졌고, 1971년에는 네팔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랑탕(Langtang)야크를 따라간다는 뜻으로 어느 스님이 도망가는 야크를 따라가다가 이 아름다운 계곡을 발견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명명법을 닮은 이름이다.

 

붓다 롯지에서 6시에 일어나 물휴지로 얼굴을 훔치는 간편 세수를 한다. 히말라야에서는 물이 부족할뿐더러 찬물 세수를 하면 고산병에 걸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히말라야는 게으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다.

 

7시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출발한다. 우리의 장도를 축복하는 듯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파랗다. 무거운 짐은 카고백에 담아 포터에게 넘기고, 배낭에는 물 두 통, 갈아입을 옷 두 벌, 간식거리, 휴지, 선글라스, 카메라가 들어 있다. 이 정도면 가뿐하다. 길은 마을을 지나 랑탕강을 이웃하며 상류로 향한다. 순하게 생긴 검은 개 한 마리가 마을에서부터 우리 뒤를 한참 동안 따라온다.

 

이것 봐, 오리온. 스틱은 그렇게 잡는 게 아니야.”

산지기가 스틱 잡는 법을 가르쳐준다. 나는 스틱 손잡이에 달린 끈이 스틱을 벽에 걸 때 쓰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손목에 감고 스틱을 잡아야 한단다. 도대체 스틱 잡을 줄도 모르는 초보가 히말라야를 따라왔으니 얼마나 무모한지 알 만하다.

 

우리 12명의 행렬은 자연스레 선두 그룹 6명과 후위 그룹 6명으로 나누어진다. 선두 그룹은 금오인 단장을 중심으로 율리아나, 지스나, 솔바람, 산마루, 산인이다. 다들 히말라야 유경험자인 프로급이다. 후위 그룹에는 장길산 대장의 책임하에 산지기, 벗님, 스마일, 여연, 그리고 내가 들어 있다. 이 중에 4명이 초짜배기다. 가끔 흐트러지기도 하지만 독립된 두 그룹의 질서 있는 이동이 트레킹 끝까지 유지된다. 12명의 적지 않은 인원이 안전하게 트레킹을 하게 된 비결이기도 하다.

 

후미 그룹 멤버, 고마운 랑탕의 인연이다.

 

이번에 랑탕에 오면서 나를 포함해 벗님, 스마일, 여연이 트레커에 새로 가입했다. 넷은 입사 동기인 셈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세 사람이 은퇴하거나 이직했고, 나 혼자만 만년 수습사원으로 남아 있다. 내 퇴직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럼, 못 할 게 뭐 있어.”

그런데 앞에서는 왜 저렇게 잘 걸어가는 거야?”

뱁새가 황새 따라가려 하지 말고 우리 식대로 걸어가자.”

설마 우릴 떼어놓고 자기들끼리만 올라가겠어?”

 

비스따리, 비스따리

가이드가 연신 주문을 걸듯 주의를 준다. 한국식 빨리 빨리는 여기서는 통하지 않는다. 히말라야에서는 천천히 가는 게 빨리 가는 거란다.

느릿느릿 걷는 건 내 특기가 아닌가. 히말라야는 딱 내 체질이야.”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흐뭇해한다.

 

뱀부 롯지에 적힌 한국어가 이곳에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를 말해준다.

 

물소리 요란한 뱀부 롯지에서 떡라면으로 점심을 먹다. 포터 중에 요리사가 있어 부탁만 하면 뭐든지 잘 만들어 준다. 히말라야에서 먹는 라면 맛이 어떨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식사 후에는 따스한 햇볕을 쬐며 쉰다. 겸해서 등산화와 양말도 말린다. 급하게 고도를 높이면 안 되니 시간 여유는 넉넉한 편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지만 점심 후 휴식 시간은 꿀맛처럼 달다.

 

라마 롯지
롯지 식당 난롯가에서 따스한 담소 시간

 

림체를 지나 340분에 라마 롯지에 도착하다. 고도 2,400m 지점이다. 술을 마실 수 있는 마지막 장소라고(알코올은 고산병의 원인) 다들 난롯가에 모여 담소를 나누며 취하지 않을 정도로 술잔을 기울이다. 깊은 계곡 밤하늘에 카시오페아와 오리온이 떠 있다. 곧이어 모습을 드러낸 둥근 달이 롯지 창을 환하게 밝힌다.

 

 

라마 롯지의 방이다. 좁은 정사각형 방에 침대 두 개가 놓여 있을 뿐 다른 여유 공간이 없이 옹색하다. 짐은 침대 사이 통로에 풀어야 한다. 히말라야에 있는 롯지는 다 비슷하다. 벽은 돌이나 판자 등으로 엉성하게 되어 있어 찬 기운을 막아주지 못한다. 난방은 물론 전기도 들어오지 않으니 밤이 되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침낭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기가 싫어지고 잠이 오든 말든 버티는 수밖에 없다. 피곤해서 잠에 곯아떨어지는 게 제일이다.

 

네팔에 있는 동안 내 룸메이트는 베테랑 장 대장이다. 장 대장이 아니었으면 랑탕을 알지도 못했을 테고, 무탈하게 트레킹을 마쳤을지도 의문이다. 나는 맨 끝에 뒤처져 걷기 때문에 후미를 책임진 장 대장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다. 밤낮으로 신세를 많이 졌다.

쌩큐, 장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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