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랑탕 랜선 트레킹(5)

샌. 2021. 4. 1. 10:13

새벽 5시 기상, 6시 아침 식사, 7시 출발이 우리의 규칙적인 일과다. 오늘은 고도 3,000m를 지난다. 개인차가 있지만 고산병이 나타나는 높이다. 고산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다이아막스를 먹다. 원래는 이뇨제인데 고산증세에도 효과가 있다고 소문이 난 약이다.

 

어제와 달리 선두 그룹과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우리 후미 그룹도 서로의 간격이 벌어지면서 각자 따로따로 걸어간다. 단체로 왔지만 길에서는 서로 떨어져서 걷는 것도 괜찮다. 오히려 권장할 만하다.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여기서는 혼자라고 해서 불안하지 않다. 도리어 아늑하고 편안하다. 히말라야가 사랑 가득한 품으로 안아주는 것 같다.

 

일행과는 만났다 떨어졌다 하며 앞으로 나간다. 길은 경사가 급하지 않아 어려움이 없다. 걸어가다 보면 휴식 장소에서 모두 기다리고 있다. 이때가 일행 전체가 만나는 때다. 대개 밀크티를 마시며 20분 정도 쉬다가 출발한다. 빨리 가는 사람은 휴식 시간이 그만큼 더 길다.

 

밀크티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 고다타베라. 뒤에 보이는 설산이 랑탕 최고봉인 랑탕리룽(7225m)이다.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차르르하는 소리를 내며 마니차를 돌린다. 작은 물레방아가 기도문이 적힌 원통을 돌리면서 쉬지 않고 기도를 한다. 여기서는 바람도 기도하고 물도 기도한다. 바람과 물의 기도는 가장 사심이 없는 기도가 아닐까. 바라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머리가 지끈거린다. 아침에 이뇨제를 먹어선지 오줌이 30분마다 나온다. 고산병을 예방한다지만 못 할 짓이다. 내일은 비아그라를 먹어볼까. 그러다가 밤에 잠을 못 자면 어쩌지. 차라리 약 없이 버티기로 한다. 무리하지 않고 걸으면 잘 적응해 낼 것 같다.

 

점심을 먹은 붓다 롯지

 

4시간여를 걸어 1130분에 붓다 롯지에 도착하다. 꽁치김치찌개를 만들어서 네팔의 푸석푸석한 밥을 말아먹는다. 여기까지 와서 꼭 한국 음식을 찾아야 하는 걸까.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히말라야 고소에 들면 우선 입맛이 없어지고 소화불량이 생긴다. 높이 올라갈수록 향료가 들어간 네팔 음식은 쳐다보기도 싫어진다. 먹어야 걸을 수 있는데 어쩌겠는가. 김치찌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식단이다. 안살림을 맡은 지스나, 율리아나, 솔바람에게 감사한다.

 

식사 후에는 역시 따스한 햇볕을 쬐며 나른하게 기분 좋은 휴식을 취하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포터들은 마당에서 자기들끼리 오락을 즐긴다. 당구와 비슷한데 네 귀퉁이에 뚫린 구멍에 동전을 손가락으로 튕겨 넣는 간단한 게임이다. 내 눈에는 그다지 재미있어 보이지 않는데 포터들은 무척 진지하다. 아마 돈내기라도 하는지 모르겠다.

 

포터들의 망중한

 

히말라야 고산 지대에는 셰르파족이 많이 산다. 이들은 히말라야 등반가의 짐을 지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셰르파족은 다른 종족이 범접하지 못하는 선천적으로 우수한 체력을 가지고 있다. 수천 년간 고소에 맞게 진화해 왔을 것이다. 포터는 네팔에서 인기 있는 직업이라고 한다.

 

하루 일당이 가이드는 12달러, 포터는 10달러다. 우리 기준에는 얼마 안 되지만 이들에게는 큰돈이다. 한 번 포터를 다녀오면 가족의 몇 달 생활비가 된다고 한다. 그래도 30kg이나 되는 짐을 지고 산길을 힘들게 오르는 모습은 애처롭다. 복장이 너무 변변치 못하고 슬리퍼를 신은 사람도 있다. 설마 신발이 없지는 않을 테고, 그게 편한 모양이다.

 

올라갈수록 계곡은 U자형이다. 전형적인 빙하 침식 지형이다. 1만 년 전 빙하기 때 이곳은 엄청난 얼음과 눈으로 덮여 있었다. 간빙기가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자 빙하가 미끄러지면서 산을 깎아냈다. 얼음칼이 산을 도려낸 길을 따라 우리가 올라가고 있다.

 

더 과거로 올라가면 약 1억 년 전에 인도 대륙판이 북상하면서 유라시아판과 충돌해 히말라야 습곡산맥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두 판의 박치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일까, 2015년의 네팔 지진 때는 1만 명의 희생자가 나왔다. 트레커에서도 모금을 해서 구호금을 보냈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고 짧고 나약한 존재다. 지질학적 스케일로 보면 인간의 일생은 하루살이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 점 먼지 같은 존재의 성취, 번민, 희로애락은 다 무어란 말인가.

 

오후 320분에 랑탕(3,330m)에 도착하다. 티베트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많이 살아선지 마을에는 사원이 있고 집집마다 롱다가 펄럭인다. 오늘 묵을 숙소는 샹그릴라 롯지다. 히말라야에 있는 롯지는 시설은 허술해도 이름 하나만은 모두 멋지게 지었다. 이 지구상에서 숨겨진 지상낙원이라는 샹그릴라, 그러나 랑탕의 샹그릴라는 좁고 부실하다. 벽에는 구멍이 숭숭 나 있다.

 

오늘 숙소가 있는 랑탕 마을
숙소에서 본 랑탕 마을 외곽 풍경

 

저녁이 되자 아름다운 랑탕 마을이 붉게 물들고, 밤하늘에는 별이 하나둘 나타난다. 히말라야의 별은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밝다.

 

오리온, 왜 닉네임을 오리온으로 지은 거야?”

, 트레커에 가입하고 닉네임을 지으라 하길래, 마침 그때 아이들에게 오리온 별자리를 가르치고 있었거든. 그래서 오리온으로 한 거야.”

“......”

 

내가 생각해도 너무 멋없는 대답이다. 옆에 앉은 사람도 입을 다물고, 아득히 먼 곳에서 반짝이는 시리우스가 멀뚱멀뚱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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