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랑탕 랜선 트레킹(6)

샌. 2021. 4. 2. 09:46

5시에 기상하여 헤드랜턴 빛에 의지해서 짐을 싼다. 이젠 침낭을 거두는 데도 숨이 차고, 등산화 끈을 매는 데도 호흡을 가다듬어야 한다. 폐가 산소를 더 달라고 아우성친다. 여기 산소 농도는 해수면의 60%.

 

새벽바람이 거세고 차갑다. 옷을 두껍게 껴입고 식당에 가서 계란후라이와 누룽지로 아침 식사를 한다. 뜨끈한 누룽지 끓인 물이 들어가니 해장을 한 듯 속이 풀어진다. 아침 해가 떠오르면 상황이 일변하고 공기는 금방 데워진다. 대기의 방해를 덜 받고 내리쬐는 햇살이 눈이 부시도록 따갑다. 하늘은 푸르다 못해 검은색이다. 공기가 희박해서 공기 분자의 산란이 그만큼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랑탕 계곡의 끝 마을인 캰진곰파까지 간다. 캰진곰파는 랑탕 트레킹에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마을로 이곳에서 랑시샤카르카를 다녀오고 체르고리(4,984m)에도 오를 예정이다.

 

후미에서 장길산과 나란히 걸어가는데 들판에서 일하던 네팔 여인이 나마스떼 나마스떼하며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꾀꼬리가 노래하는 듯한 여인의 가늘고 투명한 목소리가 맑은 대기로 퍼져나간다. 우리도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나마스떼하며 화답한다. ‘나마스떼당신 내면의 신성에 경배합니다라는 뜻의 네팔 인사말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사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당신 내면의 그곳

우주 전체가 자리한 그곳을 경배합니다.

나는 당신 내면의 그곳

사랑과 빛, 진실과 평화가 깃든 그곳을 경배합니다.

나는 당신 내면의 그곳을 경배합니다.

당신은 당신 내면의 그곳에 있고

내가 나의 내면의 그곳에 있으면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네팔은 80%가 힌두교도이지만 이곳은 티베트와 가까워 불교 신자가 많다. 주민은 대부분 티베트 불교를 믿는다. 그러나 힌두교와 불교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힌두사원에 부처상이 모셔져 있는가 하면, 고사인쿤드에서 열리는 힌두교 축제 때는 불교도도 함께 참가해서 기도하고 춤춘다고 한다. 심성도 히말라야를 닮는지 상대를 향한 열린 마음이 아름답다.

 

7,225m의 랑탕리룽 옆을 지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히말라야를 걷는다고 대오철저(大悟徹底)해서 인생사의 망상이 없어지기야 하겠는가. 히말라야는 답이 아니라 질문을 하라고 부르는 것 같다.

 

네팔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글 하나를 읽었다. 어느 분의 인터뷰 기사였는데, ‘사회주의적 장치가 부분적으로 작동하면서 자본의 힘이 드문드문이라도 무력화되는 사회를 꿈꾼다고 했다. 교조적 좌파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자유롭고 당당한 생활좌파가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좌파라는 낯선 용어가 와 닿았다. 또한 ‘3()1()’이라고, TV, 베스트셀러, 대형마트를 멀리하고 예술작품을 가까이하라고 충고했다. 길을 걸으며 문득 그 말이 떠올라 음미해 본다.

 

캰진곰파

 

11시에 캰진곰파의 뷰포인트 롯지에 도착하다. 캰진곰파는 고도 3,870m 지점이다. 체감으로 느껴지는 고소증이 상당하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의식이 몽롱하다. 안경을 손에 들고 있으면서도 안경을 찾느라 허둥대고, 물건을 두고도 금방 깜빡한다. 여기서 이틀을 묵으며 키모슝리, 랑시샤카르카, 체르고리를 다녀온다.

 

인상이 좋은 뷰포인트 롯지 주인은 부인이 서울에서 5년째 일하고 있다며 우리를 반긴다. 매달 500달러씩 돈을 보내오는데 그래서 엄청 부자라고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보이며 자랑한다. 새로 지은 듯한 깨끗한 롯지도 아마 부인 덕분이리라. 예전에 우리가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듯 네팔 사람들에게 한국은 희망의 땅인가 보다.

 

라면으로 점심을 먹고 일행은 키모슝리 빙하를 보기 위해 출발한다. 나는 자신이 없어서 롯지에 남기로 한다. 고소병이 심한 스마일과 산지기도 남는다. 피곤하긴 하나 처음으로 온전히 주어진 오후 자유시간이 더없이 고맙다. 롯지 뜰에 나가 등산화를 말리며 해바라기를 하다가 산지기와 함께 마을을 산책하다.

 

키모슝리로 떠나는 트레커
캰진곰파 마을 앞에 있는 설산

키모슝리로 떠났던 아홉 명은 결국 목표지점까지 가지 못하고 두 시간 만에 되돌아온다. 너무 지쳐서 포기했다고 한다. 안 따라간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저녁이 되니 나도 역시 목과 코가 따갑고 으슬으슬 한기가 찾아온다. 너무 무리할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몸살 증세다. 이때는 쉬어주는 게 약이지만 내일 일정도 만만치 않다. 감기약을 먹고 곯아 떨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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