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고소는 고소다. 잠자는 중에도 숨이 차서 수없이 눈이 떠진다. 마치 누가 목을 조르는 것 같다. 그럴 때는 호흡을 급하게 해야 진정이 된다. 옆에 산소통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계란후라이와 누룽지로 아침 식사를 하고 키모슝리(4,620m)로 출발한다. 고개를 젖혀야 꼭대기가 보이는 산을 오전 중에 다녀와야 한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몸이 무거워 걷기가 힘들다. 앞서 나가는 사람과의 간격이 점차 벌어지더니 아예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다. 어제는 날았는데 오늘은 긴다.
후미 그룹도 흩어지고 맨 뒤에는 벗님과 여연, 나 이렇게 셋이다. 얼마 안 가 벗님은 도저히 못 가겠다며 포기한다. 여연과 둘뿐인데 곧 답답한지 여연마저 앞서 나간다. 결국 나와 포터만 남아 있다. 4천 미터가 넘는 고소에서의 오르막은 정말 너무너무 숨이 차고 힘들다. 두세 걸음 걷다가 멈추고 심호흡, 또 두세 걸음 걷다가 심호흡, 완전히 거북이걸음이다.
육체의 고통보다 혼자 남았다는 게 더 힘을 빠지게 한다. 그냥 뒤돌아가고 싶어도 지금까지 한 고생이 아까워 발길을 돌리지 못하겠다. 나도 해낼 거야! 인간은 본래 고독한 존재가 아닌가. 옆에 사람이 많은 것 같지만 인생길 고비마다 결국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 아니던가. 밖이 아니라 나에게만 집중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거친 어깻숨을 내뿜으며 발만 내려다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오직 샤니만이 충직한 하인처럼 묵묵히 내 뒤를 따라온다. 가끔 뒤를 돌아보면 어제와 완전히 딴판인 것이 의아한 듯한 표정이다.
“야, 샤니.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지 말라구. 어젯밤에 잠만 잤지 딴짓은 안 했단 말이야!”
아무리 힘들어도 끝은 찾아온다. 언덕길이 끝나고 능선에 선다. 시야가 넓어지고 설산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사실 혼미 상태라 멋진 풍경이라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샤니는 여기서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며 손가락으로 내가 설 자리를 가리킨다. 명령에 따를 수밖에, 샤니와 주종 관계가 바뀐 걸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상에는 선두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하다. 잔뜩 민폐를 끼친 셈이다. 오래 기다리던 일행이 박수로 환영해 준다. 너무 힘든 탓인지 정상에 오른 감격은 증발하고 멍할 뿐이다. 인증샷을 남기기 위해 만세를 부르라고 하는데 손들기조차 귀찮다. 그러고는 쉴 틈도 주지 않고 야속하게도 바로 떠나자고 한다. 오후 일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다. 어쨌든 내 등산의 최고 기록인 4,620m를 찍은 2009년 1월 14일이다.
키모슝리에 오르면서 히말라야가 주는 교훈을 하나 더 얻는다.
“히말라야에서 까불면 다음날 죽는다!”
칼날같이 생긴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지그재그의 급경사 내리막길이 계속된다. 산길은 흙먼지가 엄청 많이 인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캰진곰파 마을과 계곡 풍경은 일품이다. 계곡 건너편에 칸자라패스가 있다. 겨울에는 통제되지만 길이 열려서 저 패스를 넘으면 바로 헬람부 지역으로 갈 수 있다.
롯지로 돌아와 라면과 빵으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고사인쿤드로 가기 위해서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벗님은 고소병이 심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배낭은 가이드에게 맡기고 겨우 걸음을 뗀다. 내려가는 길이라 점차 회복되는 게 눈에 띌 정도로 보여서 다행이다.
드문드문 작은 마을을 지난다. 길에 인접한 집 앞에는 아이들이 나와 있는데 사탕과 볼펜, 머리핀 등을 주니 좋아한다. 트레킹 하는 사람들한테 이런 작은 선물을 받는 게 습관이 되어 있지 않나 싶다. 그래도 아이들의 눈빛은 맑고 순수하고 아름답다. 네팔 사람들 눈 속에는 히말라야의 파란 하늘과 흰 눈이 담겨 있는 것 같다.
오후 늦은 시간이 되어 올라갈 때 묵었던 랑탕의 샹그릴라 롯지에 여장을 풀다. 랑탕 마을에는 소형 수력 발전기가 있어 짧은 시간이지만 전기가 들어온다. 디카를 충전하다. 밤이 되니 찬 바람이 롯지를 날릴 듯 거세게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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