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랑탕 랜선 트레킹(1)

샌. 2021. 3. 28. 12:24

다시 히말라야 랑탕을 걷는다. 코로나 시대라 몸이 직접 가는 게 아닌 랜선 트레킹이다. 인간의 뇌는 상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한다. 현실 같은 상상은 실제 경험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다. 이보다 경제적인 여행법이 없다. 12년 전 12명의 트레커와 걸은 코스를 함께 다시 걷기로 한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복도에서 장 대장이 물었다.

안 선생, 히말라야 갈 생각 있어?”

내 대답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튀어나왔다.

좋아!”

나는 이리 굴리고 저리 따져보는 햄릿형이지만 이때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히말라야가 내 버킷 리스트 1순위였기 때문이다. 때맞은 줄탁동시(啐啄同時)였다. 전부터 장 대장에게 히말라야에는 꼭 가고 싶다고 말해두었던 터였다.

 

딱히 이유는 모르지만 히말라야는 나에게 이상향이었다. 이 지구별에 찾아온 이상 히말라야에는 꼭 가봐야 할 것 같았다. 히말라야에 못 가보고 죽으면 뭔가 억울할 것 같은 그런 느낌, 히말라야를 떠올리면 정체 모를 아득한 그리움이 피어올랐다. 히말라야에는 장엄한 풍경과 더불어 인간의 영혼을 울리는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랑탕과 함께 트레커와의 인연도 시작되었다. 이전까지 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가뭄에 콩 나듯 산에 가는 정도였으니 작은 배낭과 허술한 등산화 하나가 전부였다. 랑탕에 가자면 모든 것을 새로 마련해야 했다.

 

한 달 전부터 필요한 물품을 점검하며 하나씩 사들였다. 등산용품은 주로 을지로에 있는 아웃도어 매장에서 샀는데, 장비값만 150만 원이 들었다. 예상보다 훨씬 지출이 컸다. “이럴 줄 알았으면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왔다. 히말라야를 너무 우습게 본 탓이었지만 후회해도 이미 늦었다.

 

출발하기 전날 안 가던 사우나에 가서 때를 벗기고 목욕재계했다. 히말라야 성소(聖所)에 들자면 응당 치러야 할 의식이라 여겼다.

 

짐을 꾸리기 위해 하나하나 체크 리스트와 대조하며 꺼내놓으니 가져가야 할 물건으로 거실 한쪽이 가득했다. 도봉산에 오를 수준이면 랑탕 트레킹은 충분하다는 말에 속은 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14박15일의 랑탕 트레킹에 필요한 준비물은 이렇다.

 

 

1. 배낭 30L, 카고백 120L, 어깨걸이 가방

2. 신발(등산화, 운동화, 슬리퍼)

3. 침낭, 메트리스, 깔판

4. 의류(다운자켓, 폴라텍, 고어텍스, 고소용 내의, 속옷 3, 긴팔티 3, 바지 4, 모자 3, 장갑 2, 양말 6, 마스크, 스카프, 포터 옷)

5. 아이젠, 스패츠

6. 식품(누룽지 500g, 라면 5, 김치 500g, 참치캔 4, , 커피믹스, 고추장, 비빔밥 2)

7. 간식(영양갱, 껌, 호두, 건포도, 초콜릿, 캬라멜, 사탕, 초코파이, 미숫가루, 설탕)

8. 수첩, 필기구

9. 수저, 포크, 그릇

10. 스틱

11. 우산

12. 선글라스

13. 헤드랜턴

14. 카메라 2, 소형 삼각대, 필름, 충전기

15. 세면도구(수건, 치약, 칫솔, 비누, 면도기, 손톱깎이, 로션, 스킨)

16. 지퍼백 5, 비닐봉지 5

17. 선크림, 립글로스

18. 비상약품, 홍삼정

19. 물티슈(3), 휴지(휴대용 5, 두루마리)

20. 물병, 보온병,

 

모든 짐을 넣으니 카고백이 20kg, 배낭이 8kg였다. 중량 한도인 20kg을 맞추느라 카고백을 들고 저울로 왔다갔다 했더니 허리가 결렸다. 밤새 온열 찜질을 하며 달랬다. 이런 저질 체력으로 과연 랑탕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까, 두려움과 설렘으로 잠을 설쳤다. 해발 5,000m까지 올라간다고 했더니, “제발 살아서 돌아오라구!”라며 약 올리듯 말하던 옆자리 김 선생의 얄미운 얼굴도 자꾸 어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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