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3월 2일

샌. 2021. 3. 2. 10:42

등교하는 아이들을 오랜만에 본다. 오늘이 새 학기가 시작하는 날이다. 마스크를 쓴 채 느릿느릿 학교로 가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코로나 때문에 작년에는 주로 재가 학습을 했으니 교실에서 친구들과 같이 공부하는 일이 낯설지 모른다.

 

3월 2일이 스트레스인 건 교사였던 나도 마찬가지였다. 설레임보다 또 어떻게 일 년을 티격태격하며 보낼까, 하는 걱정이 더 컸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부담이었다. 나의 3월 2일은 늘 그렇게 납덩이처럼 무거운 심정으로 시작했다. "그래, 다섯 달만 버티면 방학이야." 이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30년 넘게 교직에 있었지만 내 체질에는 맞지 않았다. 가르치는 일이 늘 사람과 접촉해야 해서 나 같이 사람과 부딪치는 게 서툰 입장에서는 가혹한 직업이었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교직이 주는 시간의 여유와 자유로움이었다. 나는 상당히 이기적인 선생 노릇을 한 셈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돌아갔으니 돌아볼 때마다 늘 죄지은 심정이 된다.

 

베란다 창 밖으로 등교하는 아이들 모습도 이젠 끊어졌다. 오늘은 반 배정을 받고 새 교실로 이동하여 새 친구, 새 담임과 대면할 것이다. 그리고 오후에는 입학식이 있다. 교사도 정신 없이 바쁜 날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가 명퇴한 지 10년이 되었다. 그렇게나 벗어버리고 싶던 굴레를 던져버린 행복한 날이었다. 정말 하늘을 나를 듯이 기뻤다. 퇴임식에서 하고 싶었던 첫마디가 "오늘은 제일 행복한 날입니다!"였는데 실제로 써먹지는 않았다. 함께 퇴직했던 동료는 아쉬움에 눈물을 흘렸는데, 나는 싱글벙글하며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제는 종일 비가 내렸지만, 강원도에서는 폭설이 내려 도로가 마비되었다는 소식이다. 많은 차들이 도로 위에서 밤을 지샌 것 같다. 좁은 땅덩어리지만 각자가 처한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비슷한 조건에서도 누구는 울고, 누구는 웃는다. 오후에 날이 개면 가까운 공원으로 새를 보러 나가볼까 한다. 공원 옆에 있는 학교 앞을 지나갈 때는 가볍게 빙긋 웃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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