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넉 달만에 이발하다

샌. 2021. 1. 13. 15:29

오랜만에 이발을 했다. 지난해 추석 전에 이발한 뒤로 처음이니 넉 달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외부인과 접촉을 마다하다 보니 이발소도 발을 끊었다. 넉 달이 지나니 머리칼은 귀를 전부 가릴 정도다. 보기에는 거칠어도 바깥출입해서 타인을 만날 일이 없으니 앞으로 몇 달은 더 버틸 수가 있다. 그런데 이번 주말에 조카 결혼식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깎으러 이발소를 가야 했다.

 

그동안 이발소보다는 미용실을 자주 이용했다. 이발소는 면도해 주는 게 영 불편했다. 나는 내 몸을 누가 만지는 게 아주 싫다. 이발소에서는 머리를 깎고나면 여자 면도사가 꼭 면도를 해 준다. 정성껏 털을 밀어준다고 볼을 잡아당기고 입술을 비틀기도 한다. 신경이 쓰여도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저는 면도를 안 합니다"라고 해 봤지만 서로가 어색해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 뒤에 미용실에서도 남자 머리를 잘라주면서 나는 쾌재를 불렀다. 미용실에서는 면도를 하라고 하지 않는 게 제일 기뻤다.

 

중국 여행을 하면 거의 대다수가 마사지를 받는다. 발 마사지부터 전신 마사지까지 있다. 나는 여러 차례 중국 여행을 했지만 마사지는 "노!"다. 처음에 멋모르고 발 마사지를 받았는데 젊은 아가씨가 발을 조무락거리는 게 너무 불편했다. 그 뒤로는 마사지를 받으러 가자고 하면 나는 열외로 빠진다. 일행이 마사지를 받는 동안 한두 시간 정도 낯선 주변 골목길을 산책하는 게 훨씬 더 재미있다. 나는 가이드가 좋아할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목욕탕에서 세신사한테 때를 미는 일은 상상도 못 한다. 딱 한 번 예외가 있었다.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에 어쩔 수 없이 세신사 신세를 져야 했다. "저, 죄송한데, 허리 수술해서, 부탁합니다." 때를 밀도록 부탁하면서 죄송하다고 했으니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비록 서비스 요금을 지불하지만 마치 하인처럼 남을 부리는 것 같은 행위는 질색이다. 이것도 내 별난 성격인지 모르겠다. 나는 내 경계 안에 누가 들어오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2년 전 쯤 시내에 남성 전용 이발소가 생겼다. 의자 하나에 중년의 이발사가 혼자 지키는 작은 이발소다. "어떻게 깎아드릴까요?" "그냥 적당히요." 나와 무뚝뚝한 이발사가 주고받는 유일한 대화다. 여기서는 이발 뒤에 머리를 감는 것도 내가 직접 한다. 면도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이발하는 것도 솔직히 좀 대충이다. 들어갔다 나오는 데 10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그런 점이 편해서 좋다. 이 이발소가 생긴 뒤 단골 미용실에서 떠났다. 사실 요금이 싼 탓도 있다. 미용실은 13,000원이고 이발소는 8,000원이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몰려온 한파가 물러가고 오늘은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랐다. 오후가 되니 지붕에 쌓인 눈이 눈에 띄게 확 줄었다. 짧게 깎은 머리가 개운하다. 곧 봄이 올 것만 같고, 뭔가 좋은 일이 슬며시 찾아올 것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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