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음치는 서러워

샌. 2020. 12. 26. 11:06

전 직장 동료 다섯이 모이는 작은 모임이 있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봄에 한 번 만난 뒤로는 대면 모임을 갖지 못했다. 대신 단톡방에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며칠 전에 A가 55년 전 중학생 때 일화를 하나 올렸다. 그때 기말고사 음악 시험은 실기평가로 한 사람씩 선생님 앞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지정곡은 홍난파의 '고향 생각'이었다. 반 전체의 평가를 마친 후 음악 선생님이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음악 점수 '양'을 줄 수는 없다. 70점이 안 되는 학생은 다시 한번 노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그러면서 재시험 볼 학생 이름을 불렀는데 일고여덟 명 속에 A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만큼 노래에는 자신이 없었다. A는 다시 노래를 불렀고 가까스로 음악 점수 '미'를 받았다는 얘기였다. 자신이 음치여서 어려서부터 고생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이 사연을 보고 B도 제 얘기를 올렸다. B도 노래를 못 불러서 음악 시간이 싫었다고 한다. B가 중학생 때 음악 시간이었다. 노래할 때 입을 작게 벌린다고 음악 선생님한테 지적을 받고 한 시간 동안 교실 앞에 불려 나가 입을 크게 벌리고 선 벌을 받았다. 그 이후로 더 노래 부르는 걸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썼다. 나중에 학교에 발령 받고 나서 교직원 회식이 있으면 미리 도망갈 궁리만 했다고 한다. 그때는 돌아가면서 노래를 한 곡씩 부르는 문화가 있었다. 다행히 교회에 다니고 찬송가를 자주 부르게 되면서 노래 콤플렉스가 극복되었다고다.

 

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음치인 나도 아픈 경험이 하나 떠올랐다. 역시 중학생 때 음악 실기시험 보는 시간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나 노래를 부르는데 웬걸, 음악 선생이 다가오더니 뺨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인마, 노래를 이 따위밖에 못 불러?" 안 그래도 조마조마했는데 엉겁결에 당한 날벼락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에도 서러워서 오래 울었다. 공부 못해서 매 맞는 것과는 달랐다. 차라리 점수를 0점을 주고 말지, 이런 식으로 아이의 자존심을 뭉개버리는 선생이 미웠다. 그때부터 노래라면 입을 벙긋하기도 어려웠다. B는 찬송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지 몰라도 나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단톡방에서 나머지 둘은 묵묵부답이었지만 내가 볼 때 그들도 대동소이하지 않나 싶다. 한민족이 풍류를 즐긴다고 하지만 모임에서 노래 스트레스에 시달린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물며 음치라면 말해 무엇하랴. 옛날 직장 회식은 강제로 술 마시 억지로 노래 불러야 했다. 회식에서는 꼭 나대는 사람이 있어서 남이 싫어하든지 말든지 노래를 시켰다. 내 순서가 오기 전까지 좌불안석이었다. 그 뒤에는 노래방이 생겨서 2차나 3차 필수 코스가 되었다. 워낙 자주 겪다 보니 나중에는 적당히 눈치껏 도망가는 요령이 생겼다.

 

"그래, 너도 연습을 더 하면 잘 할 수 있을 거야!" 그때 음악 선생한테서 이런 격려라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런다고 노래를 잘 하게 될 리가 없겠지만 고마운 마음은 평생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나도 교단에 서게 되면서 최소한 아이들 가슴에 상처를 주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도 음악 선생 덕분이었다. 그런 점에서는 반면교사 역할을 하신 분이다.

 

이만큼 와서 돌아보니 노래 콤플렉스는 내가 스스로 갇힌 감옥이었다. 그 누구도 내가 노래를 잘 하는지 못 하는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혼자서 속앓이했을 뿐이다. 노래 못 하는 게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자격지심으로 스스로 주눅 든 게 아닐까. 일찍 훌훌 털어냈더라면 인생을 좀 더 가볍게 살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소심하고 내성적인 아이가 그 벽을 깨뜨리고 나올 용기를 갖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인생에는 알면서도 안 되는 일이 흔하게 존재한.

 

시대가 변한 건지 아니면 나이 들어 그런 건지 이제는 노래 부를 기회가 거의 없다. 사람을 만나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고, 전처럼 부어라 마셔라 술독에 빠지지도 않는다. 술자리가 끝나고 노래방에 가자는 사람도 없다. 다들 늙고 힘이 빠졌다. 음치의 서러움을 느낄 자리 자체가 아예 생기지 않는다. 나한테는 지금이 너무 편하고 좋다. 그리고 가끔 궁금해진다. 만약 누가 노래방에 가자고 할 때 성큼 따라갈 수 있을지, 더 나아가 마이크를 잡고 모두를 웃겨줄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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