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승리의 키스

샌. 2020. 11. 25. 12:10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항복하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뉴욕 메디슨 스퀘어 광장에는 축하하는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서로 환호하고 키스하며 기쁨을 나눌 때 한 커플의 열정적인 키스가 사진기자인 에이젠슈테트(A. Eisenstaedt)의 렌즈에 담겼다. <라이프>에 실려서 유명하게 된 '승리의 키스'다.

 

해군 복장을 한 군인과 그의 연인이 재회하며 뜨겁게 키스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상은 다르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둘은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애인과 술을 마신 뒤 거리로 나온 남자는 무조건 지나가는 여자를 붙들고 키스를 했다. 이 모습이 기자의 눈에 포착되었고, 마침내 하얀 복장을 한 간호사와 키스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었다. 피사체의 옷 색깔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고 한다. 만약 여자의 복장이 어두운 색이었다면 여자의 포즈가 살아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주먹을 움켜여자의 왼손이 어색하다.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두 손은 자연스럽게 남자를 껴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로맨틱한 키스 사진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강제 키스였다.

 

사진 속 두 주인공은 21세기 들어 신원이 밝혀졌다. 남자는 22살의 멘도사였고, 당시에 휴가중으로 여자 친구와 술을 마시고 행진에 참여했다. 취기가 있는 상태에서 간호사를 보고 깊은 키스를 한 것이다. 옆에서 여자 친구가 쳐다보며 웃는 모습도 다른 사진에는 찍혀 있다.

 

여자는 프리드먼이고 21살이었다. 치과 간호사였는데 일본의 항복 뉴스를 듣고 기뻐서 거리로 나왔다. 이때 누군가 다가오는 걸 눈치도 못 챈 채 기습 키스를 받았다. 당황했지만 전쟁을 승리로 이끈 군인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뒷날 인터뷰에서 말했다. 역사적인 명장면을 남기고 프리드먼은 2016년에, 멘도사는 2019년에 사망했다.

 

한 장의 사진이지만 우리가 모르는 내용이 많다. 알면 사진은 더 재미있어진다. 물론 쓸쓸하고 가슴 아픈 사연도 많겠지만. 저기 한 사람이 지나간다. 그에게도 얼마나 많은 희로애락의 이야기가 있을 것인가. 그 이야기의 일부라도 듣는다면 우리는 그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아마도 인간으로서의 연민으로 따스하게 포옹이라고 하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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