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인 '다정소감'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다정소감(多情小感)이라고 짐작하며 책을 읽어나갔다. 책 내용도 내 짐작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에 휩쓸리지 않는 마음을 이런 단어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책 말미에서 작가는 자신의 글이 '다정에 대한 소감이자, 다정에 대한 감상이자, 다정들에서 얻은 작고 소중한 감정의 총합'이라고 말한다. 작가의 말대로라면 다정소감(多情所感)이다. 내 엉뚱한 추측에 실소를 했다.
<다정소감>은 김혼비 작가의 산문집이다. 글에서는 글을 쓴 사람이 보인다. 지은이는 어떤 사람일까, 상상도 해 본다. 김혼비 작가는 따스한 마음을 가졌으면서 다이내믹한 분 같다. 정과 동을 겸비한, 그래서 만나면 무척 재미있을 분으로 느껴졌다. 풋풋한 햇사과를 먹는 것처럼 글은 상큼하다.
'여행에 정답이 있나요' '가식에 관하여' '조상 혐오를 멈춰주세요' '그런 우리들이 있었다고' 같은 글은 세상의 편견을 유머러스하게 비판한다. 주먹을 쥐고 힘이 잔뜩 들어간 외침이 아니다. 내 주장을 단호하게 얘기하지만 상대의 입장도 헤아린다. 이런 자세를 취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작가의 글에는 공통적으로 따스한 인간미가 깔려 있다. 다정과 연결되는 부분일 것이다.
'그런 우리들이 있었다고'에서는 작가의 초등학교 시절을 회고한다. 비가 오면 엄마들은 우산을 들고 학교로 찾아왔는데, 현관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릴 수밖에 아이들도 있었다. 작가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비를 맞으며 집으로 뛰어갔는데 초라했다기보다는 우쭐했던 경험을 밝힌다. '함께'가 아닌 '혼자' 그런 상황을 잘 대처하고 즐겼다는 감각이었다. 훗날 어른들의 이야기나 드라마에서 '엄마의 챙김'을 받지 못하는 풀이 죽고 불쌍한 아이의 이미지를 보면 억울하고 의아했다고 한다. 작가의 말이다.
"드라마 등에서 챙김, 특히 '엄마의 챙김'을 받지 못해 쓸쓸하게'만' 그려지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걸 보면서 엄마를 탓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걸 보고는 아이에게 미안해할 엄마들이 떠오를 때마다, 항변하고 싶었다. 전혀 쓸쓸하지 않았던 아이들 역시 많았다고, 우산 속 자리도 아늑했겠지만 우산 밖 빈자리가 우쭐했던 아이들도 분명 있었다고. 그 빈자리를 스스로 채워가며 커간 아이들이 갖게 되는, 산성비도 부식시키지 못할 단단한 마음 같은 게 있다고. 설령 그렇지 않았던들 그건 엄마들만 미안해할 일이 절대 아니라고. 당시에는 어려서 사회가 '엄마'에게 소급해서 씌우는 책임을 무게를 잘 몰랐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어른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어른들이 미디어에 '나쁜 엄마들'을 만들어내고, 우리의 존재를 지워버렸다는 건 잘 몰랐다. 그래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그래서 한 번쯤 꼭 말하고 싶었다. 우리의 존재에 대해서, 그 시절을 우리가 어떻게 통과했는지에 대해서. 그런 우리들도 있었다고. 분명 있었다고."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내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보살핌에 기대기보다 홀로 자신을 지켜나가야 할 아이들과, 그 몫 이상으로 미안해할 엄마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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