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조선의 뒷골목 풍경

샌. 2022. 9. 18. 13:05

우리는 왕조나 위인 중심으로 역사를 배운다.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역사라면, 정사(正史)란 역사 스토리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긴 시간 우리 역사를 만들어 간 수많은 평민, 상놈들의 땀내 나는 사연은 통째로 잊혀 있다. 왕이나 양반, 위인들이 아니라 일반 민중들의 삶을 드러내는 작업도 역사가의 책무라고 본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일반 백성들의 삶의 현장을 재현한 사람 냄새 나는 생활의 역사서다. 지은이인 강명관 선생은 한문을 전공한 교수로 옛 서적에 나오는 장삼이사들의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백성을 살린 이름 없는 민중의, 군도와 땡추, 유흥가를 지배한 무뢰배들, 조선의 오렌지족, 투전 노름에 골몰한 도박꾼, 술과 풍악으로 일생을 보낸 탕자, 족집게 대리시험 전문가, 금주령과 술집, 가부장 체제에 반기를 든 여인 등 다양한 인물을 소개한다.

 

조선에서 금주령이 기본 정책이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수시로 금주령이 내려졌는데 영조 때가 제일 심했다고 한다. 영조는 재위기간인 1724년부터 1776년까지 반세기 동안 철저한 금주 정책을 펼쳤고 위반하면 사형이나 귀양을 보냈다. 금주령을 어긴 관리를 숭례문까지 나가서 직접 목을 치기도 했다. 이로 인한 부작용도 상당했던 것 같다.

 

정조대에 와서 일부 해제가 되면서 술집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목로술집, 사발막걸리집, 내외술집, 모주집, 색주가 등 종류가 다양해지고 숫자도 많아졌다. 전에 가끔 다닌 '피맛골'이라는 종로 뒷골목이 있다. 술집과 음식점이 모여 있는 골목인데, 이 책을 읽어보니 피맛골이 조선 시대의 풍경은 아니었던 듯하다.

 

유교 사회였던 조선에서 양반들의 최고 가치는 입신양명이었다. 출세하는 통로인 과거 시험이 실력 있는 인재를 등용한 것 같지만 실상은 개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을 읽어보면 한 나라의 시험 체계가 이토록 허술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시험장에서는 온갖 부정한 방법이 동원되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관례가 되고 풍속이 되어 버렸다. 소수 가문이나 학파의 권력 독점욕이 이런 병폐를 방치했던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골머리를 썩이며 공부한 과목은 시(詩), 부(賦) 등 현실에서는 쓸모 없는 것이었다. 조선의 지식분자들은 오로지 시험용 지식을 단련하는 데 골몰했다. 다산 정약용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천하의 총명하고 슬기로운 재능이 있는 이들을 모아 일률적으로 과거라고 하는 격식에 집어넣고는 본인의 개성은 아랑곳없이 마구 짓이기고 있으니, 어찌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이는 현재의 대학입시에도 적용되는 말이 아니겠는가. 주지과목 중심의 입시 틀에 집어넣고 학생들을 줄 세워 평가랍시고 하고 있다. 부정행위는 사라졌다지만 기본적인 구조는 조선 시대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조선 후기에는 도박이 유행했는데 투전, 골패, 쌍륙 등이 있었다. 제일 흔했던 투전은 면면히 이어져 화투의 '섰다'로 변한 것 같다. 현대에서는 카지노, 복권, 경마 등이 국가가 독점하는 도박에 해당한다. 주식이나 부동산 투기도 도박성이 짙다. 불로소득이나 일확천금의 심리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세상이 불안하고 불확실할 수록 사람들은 도박에 빠져든다. 조선 후기의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위기 신호로 읽힌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역사에서 소홀히 하는 바닥 민중의 삶을 살펴보는 책이다. 동시에 조선 시대 지배 세력의 병리적 현상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조선은 결코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아니었다. 엄격한 유교 이념의 뒤에서 세상은 곪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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