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

샌. 2022. 10. 6. 10:58

임사 체험 후 깨닫게 된 인생에 대한 통찰을 담은 책이다. 지은이인 아니타 무르자니(Anita Moorjani)는 인도 여성으로 어린 시절부터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살면서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접하며 성장했다. 결혼한 후에 임파선암이 발견되어 4년간 힘겨운 투병 생활을 하던 중 마지막에 신체의 기능이 멈추었고 임사 체험 상태에 들어갔다. 30시간 동안의 임사 체험은 삶에 대한 시각을 바꾸었고 병도 기적적으로 완치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변했다>는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의학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사람이 또 다른 감각에 눈을 떠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지각한다는 임사 체험은 많이 알려져 있으며 대체로 비슷한 패턴을 띄고 있다. 아니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죽은 자신을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평안과 행복에 잠긴다. 조금 전까지의 암에 의한 고통은 말끔히 사라졌다. 또한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 읽어낸다. 시공을 초월한 새로운 인식 기관이 작동한 것이다. 그녀는 이것을 '깨어났다(awakened)'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사랑과 평화, 황홀경과 경외감에 젖는다. 

 

자신의 경험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면서 아니타는 창고의 비유를 든다. 거대하고 깜깜한 창고가 있다. 그곳에 있는 당신에게는 작은 손전등 하나뿐이다. 당신은 오로지 손전등으로 비추는 것만 볼 수 있고, 이미 알고 있는 것만 그게 무언지 인지할 수 있다. 물리적 세계에서의 삶이 이와 같다. 우리는 특정 시점에 감각을 집중하는 것만 알 수 있고, 또 이미 친숙한 것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누군가 그곳의 전등 스위치를 켰다고 상상해 보자. 눈부신 빛과 소리, 색깔들이 갑자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당신은 처음으로 창고의 전체 모습을 보게 된다. 그것은 당신이 상상한 어떤 모습과도 다르다. 보이는 풍경에 당신은 압도당한다. 임사 체험도 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임사 체험을 요약하면 확장되는 느낌, 명징한 앎, 우리 모두가 하나라는 느낌, 지극히 크고 조건 없는 사랑, 우주적 차원의 이해와 지식의 습득, 우리 모두가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 우주에너지와 하나 되는 느낌 등인 것 같다. 명상이나 종교적 깨달음과 유사하지 않나 싶다. 임사 체험은 지은이가 영혼 대신 쓰는 '무한한 자아(Infinite Self)'의 세계가 열리는 특별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우주와 생명에 대해서는 신비한 영역이 너무나 많다. 물질에 깃들인 정신, 그 너머의 다른 무엇의 세계는 무지의 구름에 가려져 있다. 임사 체험이 미지의 세계의 비밀을 여는 키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문이 열리면 인간의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뿌리에서부터 흔들리고 변할 것이다.

 

임사 체험 후 자신의 길을 찾은 지은이가 하는 말이다.

 

- 나는 이제 내 주변 사람들 누구도 갖고 있지 않은 혹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삶의 관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더는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 병도 나이 듦도 죽음도 돈이 부족해지는 것도 그 무엇도 무섭지 않았다. 죽음이 더 이상 공포가 아닐 때 두려워할 것은 별로 없다. 죽음이야말로 늘 최악의 시나리오로 여겨지지 않는가. 죽음이 겁나지 않는다면 그 밖에 두려워할 것이 뭐가 더 남겠나?

 

-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란 오직 자신을 사랑함으로써만, 자기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슴을 따름으로써만, 그리고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함으로써만 얻어진다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삶이 목적이 없는 것 같고 길을 잃은 듯한 기분이 들 때, 그것은 바로 내가 자신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렸다는 뜻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본연의 모습에, 내가 이곳에 와 있는 목적에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런 일은 내가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을 때, 텔레비전 광고나 신문, 대형 제약회사, 친구들, 문화적 사회적 신념 같은 외부 원천에 내 힘을 내어줄 때 일어나곤 했다.

 

- '안으로부터 보는 관점(Insight-out View)'을 갖는다는 건 내 내면의 안내자를 온전히 신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온 우주가 영향을 받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 우주 그물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전체(The Whole)'가 나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행복하면 우주도 행복하다. 내가 나를 사랑하면 다른 이들도 전부 나를 사랑하게 된다. 내가 평화로우면 모든 창조물이 평화롭다.

 

- 내 병을 낫게 한 것은 나의 믿음이 아니었다. 임사 체험은 순수한 알아차림의 상태였고, 전에 가졌던 모든 주의와 신조가 완전히 중지된 상태였다. 바로 이 상태가 내 몸을 스스로 '재건'하게 한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낫기 위해서는 믿음을 완전히 버려야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기꺼이 놓아버렸을 때 나는 진실로 나에게 속한 것을 받았다.

 

- 놓아버릴 수 있을 때, 믿는 것은 물론 믿지 않는 것까지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내가 가장 강한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또 내면 깊은 곳에서 명징성과 동시성을 경험할 수 있을 때 나는 가장 큰 힘을 가지는 것 같다. 확실성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 자체가 더 넓은 차원의 깨달음을 경험하는 데 걸림돌이 된다. 반대로 믿음이나 결과에 대한 집착을 전부 내려놓은 과정은 정화와 치유를 가져다준다.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려면 치유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내려놓고 그저 삶이라는 흐름을 즐기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이 내가 깨달은 내용이다.

 

- 우리의 이 현실은 표현의 무대이다. 사후의 삶에 필요한 경험을 익히거나 쌓기 위해 우리가 여기에 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건 별 의미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사후에는 그런 배움과 경험 따위가 전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 우리는 이 물리적 우주와 그 안에서의 우리 삶을 경험하고 펼치기 위해 여기에 와 있다. 내가 돌아오기로 결정한 것 역시 여기에서의 삶이야말로 지금 순간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열반을 경험하기 위해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의 진정한 장엄함은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

 

- 답을 찾아 계속 바깥을 헤매고 다니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종교와 의학, 과학적 연구, 책, 다른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답을 구하고 있다. 우리는 진실이 저기 바깥에, 손에 잡히지 않은 채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더 길을 잃고 헤맬 뿐이다.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더욱 멀어지기 때문이다. 온 우주가 우리 안에 있다. 내 답은 내 안에 있고, 당신의 답 역시 당신 안에 있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은 내 안의 무엇인가를 일깨우기 위하여, 일깨워서 나를 확장시키고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 나는 내가 우주에너지와 하나됨을 느낀다. 우주에너지는 동시성의 방식으로 경이롭게 펼쳐지면서 내 삶으로 흘러 들어온다. 나는 기운이 빠지는 대신 생기로 가득 채워진다. '행위함'에 의해서 처지는 게 아니라 '존재함'에 의해서 고양되고, 우주에너지에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우주에너지와 '함께' 간다. 이런 식으로 계속하면 내 삶은 마치 선禪을 수행하는 듯한 삶이 되고, 나는 그 안에 현존하면서 모든 것이 현실 밖으로부터 인도받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언제나 그러기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확실히 삶을 재미있게 만든다! 나는 분명코 아직 길 위를 걷는 중에 있지만, 내가 할 일은 진정 이것밖에는 없다. 내 자신인 사랑이 되는 것, 그저 '내 자신'이 되는 것! 내 외부의 우주는 정확히 그 결과일 수밖에 없으며, 더 커다란 차원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 즐겁게 지내는 것, 그리고 자신이나 삶을 너무 심각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새삼 더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수많은 영적 전통들이 범하는 커다란 실수 가운데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삶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도록 한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주의主義를 만드는 거라면 아주 질색하는 사람이라는 걸 아시겠지만, 만일 치유에 이른 영적 길에서 필요한 원칙을 만들어보라고 한다면 첫 번째로 꼽고 싶은 원칙은 단연 날마다 최대한 많이 웃으라는 것이 될 것이다. 자기를 보고 웃어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이것이 어떤 형태의 기도나 명상, 찬송, 혹은 식생활 개선보다도 우선이다. 유머와 사랑의 눈으로 보면 일상의 어떤 문제도 결코 심각해 보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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