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2-1]

샌. 2023. 7. 5. 10:07

내가 가난하게 살 때 일찍이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했지만, 포숙이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이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도모하다가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던 것은 유리할 때와 불리할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이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 여기지 않았던 것은 내가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일찍이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이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던 것은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졌을 때, 소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나는 붙잡혀 굴욕스러운 몸이 되었으나 포숙이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던 것은 내가 자그마한 절개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 사기 2-1, 관안열전(管晏列傳)

 

 

춘추 시대 제나라에서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린 관중(管仲)과 안영(晏嬰)이 나오는 이야기다. 관중은 BC 7세기, 안영은 BC 6세기에 활동한 인물이다.

 

먼저 관중은 정치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제나라 재상이 되어 환공이 춘추오패의 선두 주자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관중의 부국강병 정책은 약소국이었던 제나라를 춘추시대의 강국으로 부상시켰던 것이다. 그런 관중의 뒤에 포숙(鮑叔/鮑叔牙))이라는 절친이 있었다. 둘의 우정은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사자성어로 남아 있다.

 

관중과 포숙의 우정은 특별하다. 서로 주고받기보다 포숙이 관중에게 일방적으로 베푸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관중이 무슨 실수를 하거나 손해를 입혀도 포숙의 마음은 한결 같다.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아니다. 보통이라면 친구라도 이해득실을 따지게 된다. 내게 피해만 입히는 사람을 변함없이 친구로 두기는 어렵다. 하지만 포숙은 달랐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라는 관중의 고백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본문에서는 '안다'라는 말이 반복된다. 포숙이 진즉부터 관중의 능력을 알았기에 이런 일이 가능했을 것이다. 포숙은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사람에게 물심양면의 지원을 한 셈이 된다. 심지어는 적진에 있었던 관중을 데려다 재상에 앉히면서 자신은 뒤로 물러났다. 사람을 보는 눈이나 인품에서는 관중보다 포숙이 더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자기보다 잘난 사람을 시기 질투하거나 모함하는 경우가 현실에서는 다반사다. 출세와 지위, 명예를 위해서는 누구든 밟고 올라서는 게 세상사다. 그런 점에서 관중과 포숙의 우정은 별처럼 빛난다. 조연 역할에 머물며 친구의 뒤를 든든히 받쳐준 포숙이야말로 대인(大人)이라 부를 수 있겠다.

 

관중을 소개하면서 사마천은 자신을 관중의 입장에 대입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양공이 죽자 제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공자였던 소백(小白)과 규(糾)를 모시던 포숙과 관중은 졸지에 반대 진영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정권은 소백이 차지하고 환공이 되어 즉위한다. 노나라로 도망친 규는 잡혀 죽고, 관중 역시 같은 처지가 되었다. 이때 관중은 죽음 대신 치욕을 자처하며 포로가 되어 제나라로 이송된다. 하지만 포숙이 관중을 변호해 주면서 재상으로 추천한다. 이때부터 관중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사마천은 관중이 '자그마한 절개'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적고 있다. 모시던 군주가 처형을 당했는데 관중도 소흘처럼 자살하는 게 당연했다. 당시 사대부들에게 명예는 목숨보다 더 귀중한 것이었다. 치욕을 당하느니 누구나 깨끗하게 죽음을 선택했다. 그러나 뒤에 큰 일 도모할 사람은 치욕도 마다 않고 살아남아야 함을 관중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마천 역시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살아남아 <사기>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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