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3-1]

샌. 2023. 7. 19. 10:29

공자가 주나라에 가 머무를 때 노자에게 예(禮)를 묻자 노자는 대답했다.

"당신이 말하는 사람들은 그 육신과 뼈가 이미 썩어 없어지고 오직 그들의 말만이 남아 있을 뿐이오. 또 군자는 때를 만나면 달려가지만, 때를 만나지 못하면 쑥처럼 이리저리 떠도는 모습이 되오. 내가 듣건대 훌륭한 상인은 물건을 깊숙이 숨겨 두어 텅 빈 것처럼 보이게 하고, 군자는 아름다운 덕을 지니고 있지만 모양새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고 하였소. 그대의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모습과 지나친 야심을 버리시오. 이러한 것들은 그대 자신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소."

 

초나라 위왕(威王)은 장자가 현명하다는 말을 듣고 사신을 보내 후한 예물을 주고 재상으로 맞아들이려 했다. 그러나 장자는 웃으며 초나라 왕의 사신에게 말했다.

"천금은 막대한 이익이고 경상(卿相)이란 높은 지위지요. 그대는 어찌 교제(郊祭)를 지낼 때 희생물로 바쳐지는 소를 보지 못했습니까? 그 소는 여러 해 동안 잘 먹다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결국 종묘로 끌려 들어가게 되오. 이때 그 소가 작은 돼지가 되겠다고 한들 어찌 그렇게 될 수 있겠소? 그대는 빨리 돌아가 나를 욕되게 하지 마시오. 나는 차라리 더러운 시궁창에서 노닐며 스스로 즐길지언정 나라를 가진 제후들에게 얽매이지는 않을 것이오. 죽을 때까지 벼슬하지 않고 내 뜻대로 즐겁게 살고 싶소."

 

- 사기 3-1,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이 편은 노자(老子), 장자(莊子), 신불해(申不害), 한비(韓非)를 다룬다. 노자와 장자는 도가(道家)를, 신불해와 한비는 법가(法家)를 대표한다. 도가와 법가를 같이 묶은 것은 사마천으로서는 둘을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본 것 같다. 신불해의 학문이 도가에서 파생한 황로(黃老) 사상에 근본을 두고 있다고 썼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한비자와 별도로 '노자장자열전'을 따로 엮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사마천이 살았던 한나라 때는 통치 이념이 법가에 가까웠다. 훗날 유가 사상이 공식적인 통치 이념으로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중국 역사 내내 기본은 법가였다. 그래선지 사마천은 유가나 공자를 그다지 높게 평가해주지 않는다. 여기서도 공자는 노자한테서 한 수 가르침을 받는 것으로 나온다.

 

노자는 신비에 싸인 인물이다. 생존 연대도 알려져 있지 않다. 사마천이 노자와 공자가 동시대에 살았으며 둘이 만났다고 하지만 역사적 사실인지는 의문스럽다. 도가와 유가는 늘 대립각을 세우며 부딪쳤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여러 우화가 등장했다. <장자>에 보면 유가와 공자를 조롱하는 글이 여럿 나온다. 여기서 노자가 공자에게 하는 말도 느낌상 그런 부류에 속해 보인다.

 

내 세계관의 바탕은 노장 사상이다. 노자의 '무위(無爲)'와 장자의 호방한 '자유(自由)'는 내 삶의 지표가 되어 준다. 책상 한 편에 있는 <도덕경>을 아무 데나 열어본다. 제9장이다.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보다

적당할 때 멈추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날카롭게 벼리고 갈면 쉬 무디어집니다.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이를 지킬 수가 없습니다.

재산과 명예로 자고해짐은 재앙을 자초함입니다.

일이 이루어졌으면 물러나는 것

이것이 하늘의 길입니다.'

 

노자 철학을 대표하는 말 중 하나가 '물러남 [退]'이 아닌가 싶다. 무위라고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사로운 욕심 없이 일을 함이다. 그러하다면 물러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애착이나 집착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늘의 길[天道]'이다. 놓아주지 않으면 하늘의 길에 어긋나고 재앙을 자초한다. 노자가 공자에게 "교만과 지나친 욕망, 위선적인 모습과 야심을 버리시오"라고 한 것도 같은 의미다. 노자가 볼 때 공자의 화려한 이념과 입신양명은 인간을 어지럽히는 헛된 욕망에 불과했으리라.

 

노자를 계승한 장자의 사상도 마찬가지다. 사마천이 소개하는 이 일화도 부와 명예를 헌신짝처럼 취급하는 장자의 태도가 나온다. 장자는 인간이 만든 기성 제도나 고정관념을 철저히 부정했다. <장자>는 그런 예화로 가득하다. 특히 요즘 같은 탐욕의 시대에 <장자>는 시원한 폭포수를 맞는 것 같은 호쾌함을 준다. 원래는 이번에 <장자>를 다시 읽으려 했는데, 어쩌다 <사기>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 또한 인연이 아니겠는가. 흥망성쇠의 인간사를 통해 배우는 것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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