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정나라 무공(武公)은 호나라를 칠 계획으로 자기 딸을 호나라 군주에게 시집보내고 대신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데 어느 나라를 치면 되겠소?"
관기사(關其思)가 대답했다.
"호나라를 칠 만합니다."
이에 관기사를 죽이며 무공은 이렇게 말했다.
"호나라는 형제 같은 나라인데 그대는 호나라를 치려고 하니 어찌 된 일이오?"
호나라 군주는 이 소식을 듣고 정나라를 친한 친구 나라로 여기고 공격에 대비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나라 군사들이 호나라를 습격하여 취하였다. 관기사가 한 말은 옳으나 목숨을 잃었다. 이는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쓰느냐가 어렵다는 뜻이다.
용은 잘 길들여 가지고 놀 수도 있고 그 등에 탈 수도 있으나, 그 목덜미 아래에 거꾸로 난 한 자 길이의 비늘이 있어 이것을 건드린 사람은 용이 죽인다고 한다.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아야 성공한 유세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사기열전 3-2,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이 글은 한비가 지은 '세난(說難)'에 나오는 내용이다. 군주에게 유세를 할 때 극도로 조심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군주의 마음을 잘 파악하여 내 주장을 그 마음에 꼭 들어맞게 해야 하는데에 유세의 어려움이 있다. 관기사는 군주의 속마음을 알아챘지만 때에 맞지 않는 발언으로 죽게 되었다. 역린(逆鱗)이란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한비(韓非)는 BC 3세기 한(韓)나라 사람이다. 순자 학당에서 공부하고 법가(法家)를 완성했다. 말을 더듬어 유세는 잘 못했으나 책은 잘 썼다. 한비가 쓴 책을 진왕/진시황이 보고 이렇게 말했다.
"과인이 이 책을 쓴 사람을 만나 교유할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진왕이 한나라를 공격하니 한나라에서는 한비를 사신으로 보냈다. 한비를 만나본 진왕은 책에서의 인상과 달리 실망했던 것 같다. 좋아하기는 했으나 참모로 등용하지는 않았다. 이때 이사(李斯)가 한비를 시기하여 죽이도록 건의했다. 이사는 순자 학당에서 한비와 동문수학한 사이였다. 한비의 재주를 알기에 자신의 입지가 흔들릴까 염려했을 것이다. 한비는 감옥에서 독약을 받고 죽었다.
유세의 어려움을 설파했던 한비 역시 그 유세로 인하여 이른 죽음을 맞았다. 세상사는 내 뜻이나 진정성만으로 되지 않는다. 사마천은 한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한비는 먹줄을 친 것처럼 법규를 만들어 세상의 모든 일을 결단하고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였지만 그 극단에 치우쳐 각박하고 은혜로움이 부족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검찰 출신 대통령이 법과 공정을 내세우며 직진하고 있다. 극단에 치우쳐 각박하고 은혜로움이 부족하다는 사마천의 지적과 연관되어 보여서 쓴웃음을 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