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5-1]

샌. 2023. 8. 8. 10:29

"신은 이미 명을 받아 장수가 되었습니다. 장수가 군에 있을 때에는 군주의 명이라도 받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무는 결국 대장 두 사람을 베어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고는 그들 다음으로 왕의 총애를 받는 후궁을 대장으로 삼고 다시 북을 쳤다. 부녀자들은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앞으로, 뒤로, 꿇어앉기, 일어서기 등을 모두 자로 잰 듯 먹줄을 긋듯 정확하게 하며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손무는 전령을 보내 오나라 왕에게 말했다.

"군대는 이미 잘 갖추어졌으니, 왕께서는 시험 삼아 내려오셔서 보십시오. 왕께서 그들을 쓰고자 하신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 것입니다."

오나라 왕은 말했다.

"장군은 그만 관사로 돌아가 쉬도록 하시오. 과인은 내려가 보고 싶지 않소."

 

- 사기 5-1,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이 편에서는 손무, 손빈, 오기, 세 사람을 다룬다. 먼저 손무(孫武)는 BC 500년 즈음의 제나라 출신으로 <손자병법>을 지은 인물이다. 손무가 어떤 사람인지 사마천은 이 한 가지 일화로 보여준다.

 

오나라 왕 합려(闔廬)가 손무를 초빙하여 그의 재능을 시험하고자 부녀자로도 용맹한 군사를 만들 수 있는지 물었다. 손무는 가능하다고 답하니 왕은 궁녀 180명을 내어주었다. 손무는 이들을 두 편으로 나누고 왕이 총애하는 후궁 두 명을 각 편의 대장으로 삼고 훈련을 시작했다. 손무는 제식훈련의 기초를 설명하고 훈련을 실시했지만 궁녀들은 웃으며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 이런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손무는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죄를 물어 대장 궁녀 둘의 목을 베라고 했다. 위에서 지켜보던 합려는 깜짝 놀랐을 것이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후궁이 당장 목이 날아가게 생겼다. 합려는 급히 전갈을 보냈다. 두 희첩이 없으면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니 제발 목을 베지 말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위의 글은 이에 대한 손무의 대응이다.

 

두 후궁은 결국 목숨을 잃었다. 시범 케이스에 해당하는 억울한 죽음이었다. 이러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왕이 아끼는 후궁이 죽은 것을 본 다른 궁녀들은 군기가 바짝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자로 잰 듯 행동이 일사불란해졌다. "이제 훈련을 다 마쳤습니다"라는 전갈을 받은 합려는 아마 질려버렸을 것 같다. 손무를 칭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는가.

 

너무 비정해 보이지만 손무의 원칙은 엄격했다. 여기에 누구의 예외도 없음을 보여준다. 그래야 통일된 강력한 힘이 나온다는 것이다. 합려는 손무를 장군으로 삼았고, 오나라는 군사 강국이 되었다. 궁녀 사건 뒤 손무는 합려에게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는 한갓 이론만 좋아할 뿐 그것을 실제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손무는 <손자병법>을 쓰면서 자신의 이론이 부국강병으로 나아가는 첩경임을 확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군주가 이를 실천할 강한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였다. 이 일화가 얼마나 사실인지 모르지만 손무가 어떤 인간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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