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4]

샌. 2023. 8. 2. 10:33

"어째서 약속 시간보다 늦었습니까?"

장가가 사과하며 말했다.

"못난 저를 대부들과 친척들이 송별연을 열어 주어 지체되었소."

양저는 말했다.

"장수란 명령을 받은 그날부터 그 집을 잊고, 군영에 이르러 군령이 확정되면 그 친척들을 잊으며, 북을 치고 급히 나아가 공격할 때에는 그 자신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지금 적국이 깊숙이 쳐들어와 나라가 들끓고 병사들은 국경에서 뜨거운 햇살과 이슬을 맞고 있으며 군왕께서는 편히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음식을 드셔도 단맛을 모릅니다. 백성의 목숨이 모두 당신에게 달려 있거늘 무슨 송별회란 말입니까?"

그러고 나서 군정(軍正, 군대 법무관)을 불러 물었다.

"군법에는 약속 시간이 되었는데 늦게 도착한 자에게는 어떻게 하도록 되어 있소?"

군정이 대답했다.

"마땅히 베어야 합니다."

장가는 두려워서 사람을 보내 급히 경공에게 이 일을 알리고 구해 달라고 요청했다. 양저는 경공에게 갔던 사람이 돌아오기도 전에 장가의 목을 베어 전군에 돌려 본보기로 삼았다. 전군의 병사는 모두 두려워 벌벌 떨었다.

 

- 사기 4, 사마양저열전(司馬穰苴列傳)

 

 

<사기>을 읽다 보면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사마천이 살았던 2천여 년 전과 지금이 너무 다른 것 같다. 대사상가인 노자와 장자를 다른 인물과 한데 엮어 짧게 다룬 반면, 이름도 잘 모르는 사마양저는 독립된 편으로 만들었다. 당시는 사마양저가 뛰어난 군사 전략가로서 명성이 높았던 것 같다. 

 

춘추시대 말기를 살았던 사마양저는 이름이 전양저(全穰苴)이고, 사마(司馬)는 군대의 장수 직책이다. 지금으로 치면 참모총장쯤 될 법하다. 서출이어서 낮은 지위에 있었으나 재상이던 안영의 추천으로 장군으로 발탁되었다. 당시는 적국이 침입하여 제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였다. 경공은 오래 전부터 신망받던 장군인 장가(莊賈)가 양저를 보좌하도록 해 두었다.

 

양저는 군대 출정식에서 장가와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장가는 지인들이 열어준 송별회에 참가하느라 늦었다. 자신과는 출신이나 능력에서 비교가 안 되는 양저가 하찮게 보였을 수 있다. 당연히 자신을 무시할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군령을 어긴 죄로 양저는 장가를 단칼에 베어 버렸다. 장가를 사면하라는 경공의 명령을 전하려고 사자가 군영 안으로 들이닥쳤는데 이미 장가는 죽은 뒤였다. 더구나 양저는 군영 안에서 말을 달리면 사형이라는 군법을 적용하여 왕의 사자마저 죽이려 했다. 하지만 마부와 말의 목을 치는 것으로 본보기로 삼았다. 그리고 싸움터로 나가 대승을 거두었다. 군법의 지엄함을 본 군사들은 죽을 각오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양저는 군법을 적용하는데 상하를 가리지 않고 엄격했지만 병사들은 부모나 친형제처럼 따스하게 대해줬다. 장교들에게 주어지는 물자와 양식을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병사들 중에서도 몸이 가장 허약한 병사의 몫과 똑같은 양식을 먹었다고 한다. 병사들은 앞다투어 선두에 서겠다면서 사기가 충천하게 되고, 적군을 물리치면서 실지를 회복했다. 문무를 겸비한 장군의 모범으로 사마천은 존경심을 나타내고 있다.

 

사마천은 부국강병을 주장한 법가(法家)나 병가(兵家)의 이론을 현장에서 실천한 인물로 사마양저를 고른 것 같다. 이렇듯 법치는 공평해야 한다. 남에게만 잣대가 엄격하면 공감을 받지 못한다. 지금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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