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5-2]

샌. 2023. 8. 15. 10:16

손빈은 길 옆에 있던 큰 나무의 껍질을 벗겨 내고 흰 부분에 이렇게 써 놓았다.

"방연은 이 나무 아래에서 죽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제나라 군사 중에서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을 골라 쇠뇌 1만 개를 준비시켜 길 양쪽에 매복시키고 기약하여 말했다.

"저물 무렵에 불이 들려지면 일제히 쏘도록 하라."

방연은 정말 밤이 되어서 껍질을 벗겨 놓은 나무 밑에 이르러 흰 부분에 씌어 있는 글씨를 발견하고는 불을 밝혀 비추어 보았다. 방연이 그 글을 다 읽기도 전에 제나라 군사들은 한꺼번에 1만 개의 쇠뇌를 한꺼번에 쏘았다. 위나라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방연의 자신의 지혜가 다라고 싸움에서 진 것을 알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으며 말했다.

"결국 어린애 같은 놈의 이름을 천하에 떨치게 되었구나!"
제나라 군대는 승리의 기세를 틈타 위나라 군대를 모두 쳐부수고 위나라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아 돌아왔다. 손빈은 이 일로 해서 천하에 떨쳐졌으며 세상에 그의 병법이 전해지게 되었다.

 

- 사기 5-2,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역시 군사 전략가인 손빈(孫臏)은 손무가 죽고 나서 100년쯤 뒤에 나온 손무의 후손이다. 제나라 출신으로 방연(龐涓)과 함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위나라에 가서 장군이 되었는데 늘 손빈의 능력을 두려워했다. 사람을 보내 손빈을 초대한 뒤 손빈의 두 발을 잘라서 폐인으로 만들었다. 동문수학한 사이라 죽이지는 않았다.

 

제나라에서는 손빈을 몰래 빼내와서 군사(軍師)로 삼았다. 손빈은 직접 전투에 나설 수는 없었으나 군사 전략가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했다. 어느 때, 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에서 제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손빈은 위나라 수도를 공격하면서 한나라로 향하던 제나라 군사가 자신을 쫓아오도록 만들었다. 이때 손빈은 진군하면서 군대가 숙영한 흔적의 규모를 점점 줄이도록 했다. 추격해 오던 방연이 제나라 군사들의 탈영병이 많은 것으로 착각하고 방심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협곡 지대인 마릉에서 매복하고 기다렸다. 큰 나무줄기에는 '방연은 이 나무 아래서 죽게 될 것이다[龐涓死於此樹之下]'라는 글귀를 적어놓았다. 여유 있으면서 드라마틱한 연출이다. 쫓아온 방연이 이 글귀를 봤을 때 심정이 어땠을까. 친구의 능력을 시기해서 못된 짓을 했지만 편법이 통할 수 없었다.

 

사마천은 말하길, 손빈이 방연을 해치운 책략은 영명했으나 일찌감치 다리가 잘리는 형벌를 당하는 재앙을 피하지는 못했다고 적고 있다. 뛰어난 군사 전략가일지라도 어찌 친구의 모함으로 다리가 잘리게 될 줄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손빈을 보면서 사마천 자신도 어떤 위로를 받지 않았을까. 피치 못할 고난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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