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나라 왕은 사신을 보내 오자서에게 촉루라는 칼을 내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이 칼로 자결하라."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했다.
"아! 참소를 일삼는 신하 백비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는데 왕은 도리어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나는 그의 아버지를 제후의 우두머리로 만들었고, 그가 임금이 되기 전 공자들끼리 태자 자리를 놓고 다툴 때 죽음을 무릅쓰고 선왕에게 간해 그를 후계자로 정하게 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는 태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왕위에 오르고 나서 내게 오나라를 나누어주려고 하였을 때도 나는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는 간사한 신하의 말만 듣고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그러고는 가신들에게 말했다.
"내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왕의 관을 짤 목재로 쓰도록 하라. 아울러 내 눈을 빼내 오나라 동문에 매달아 월나라 군사들이 쳐들어 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볼 수 있도록 하라."
그런 뒤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오나라 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화가 나서 오자서의 시체를 가져다가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강 속에 내던져 버렸다. 오나라 사람들은 그를 가엾게 여겨 강 언덕에 사당을 세우고 서산(胥山)이라 불렀다.
- 사기 6, 오자서열전(伍子胥列傳)
이 편에서는 복수혈전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주 무대는 중국 남부의 초, 오, 월나라이고, 때는 BC 5세기 무렵의 춘추시대 후기다. 이때는 북쪽에서 공자가 활동하던 시기다.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데 사마천은 여기서 오자서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오자서(伍子胥)는 초나라 사람으로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고자 초나라를 등지고 오나라에 갔다. 오나라에서는 합려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하고 대부가 된 뒤 초나라를 쳐서 함락했다. 복수의 염을 품고 떠난 지 16년 만이었다. 오자서는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던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헤치고 시신을 꺼내 300번이나 채찍질을 하며 원한을 풀었다.
뒤에 오나라와 월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합려가 전사하면서 아들 부차에게 대신 원수를 갚아줄 것을 유언했다. 2년 뒤 준비를 철저히 한 부차는 월나라를 공격하여 승리했다. 월나라 왕 구천은 목숨을 부지하는 대가로 부차의 신하가 되어 시중을 들었지만 속으로는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다. 오자서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월나라 왕을 죽이라고 했지만, 부차는 간신 백비의 말을 듣고 월나라와 친교를 맺은 것이다. 백비는 뇌물에 눈이 멀어 구천의 책사였던 범려와 내통하고 있었다.
왕이 누구의 말을 듣느냐에 따라 한 나라의 운명이 갈라지는 경우는 숱하게 본다. 부차도 마찬가지였다. 부차는 백비의 말만 듣고 나라를 부흥시킨 오자서를 죽인다. 위의 본문은 오자서가 마지막 남긴 말이다. 자신의 눈알을 빼서 성문에 달아 놓아 훗날 월나라가 쳐들어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게 해 달라는 처절한 심경을 남기고 자결한다. 그로부터 12년 뒤인 BC 473년, 결국 오나라는 월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원한이 원한을 낳으며 복수의 악순환이 그치지 않는다.
오자서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이 원한과 복수, 배신의 드라마로 인해 생겨난 사자성어도 일모도원(日暮途遠), 동병상련(同病相憐), 와신상담(臥薪嘗膽), 토사구팽(兎死狗烹) 등 여러 개다.
사마천은 말한다.
"원한의 해독이 사람에게 끼치는 것은 심하구나! 왕이 된 자도 신하에게 원한을 사서는 안 되거늘, 하물며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끼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