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는 사람됨이 시기심이 많고 잔인하다. 그가 젊을 때 집안에는 천금이나 쌓여 있었음에도 벼슬을 구하여 유세하다가 이루지도 못하고 파산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비웃자 오기는 자기를 비방한 30여 명을 죽이고는 동쪽으로 위나라 성문을 빠져나왔다. 오기는 어머니와 헤어지면서 자기 팔을 깨물며 맹세하기를 '저는 공경이나 재상이 되기 전에는 다시 위나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드디어 오기는 증자를 섬겼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그 어머니가 죽었지만 오기는 끝내 돌아가지 않았다. 증자는 오기를 야박하다고 하면서 그와 관계를 끊었다. 이에 오기는 노나라로 가서 병법을 배워 노나라 군주를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노나라 군주가 의심하자, 오기는 아내를 죽이면서까지 장군이 되려 하였다. 대체로 노나라는 작은 나라인데 큰 나라와 싸워 이겼다는 이름을 얻게 되면 제후들은 노나라를 도모하려고 할 것이다. 게다가 노나라와 위나라는 형제 나라인데 우리 군주가 오기를 중용한다면 이것은 위나라를 팽개치는 일이다."
- 사기 5-3,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
사마천의 기술대로라면 오기(吳起)는 극도의 출세주의자다. 자기 출세나 공명을 위해서는 사람의 목숨도 하찮게 여기는 냉혈한이다. 벼슬을 구하다가 재산을 탕진한 오기를 비웃자 마을 사람을 서른 명 넘게 죽이고는 다른 나라로 도망쳤다. 노나라에 있을 때는 제나라가 공격해 오니 왕은 오기를 장군으로 삼으려 했다. 그런데 오기의 아내가 하필 제나라 출신이었다. 왕이 오기가 제대로 싸울까 의심하자, 오기는 자기 아내를 죽여 자신이 노나라 편임을 확실히 했다. 오기는 출세에 방해가 되면 자기 아내마저 죽여버리는 잔인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러니 사방에 적이 많을 수밖에, 위의 글도 노나라 사람이 오기를 악담한 말이다.
이런 오기도 전장에서는 훌륭한 장군이었던 것 같다. 전투에 나가면 일반 병사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밥을 먹었다. 행군할 때도 말을 타지 않고 식량을 직접 가지고 다니면서 병사들과 동고동락했다. 한 번은 몸에 종기가 난 병사가 있었는데 오기는 직접 병사의 고름을 빨아주며 치료해 주었다. 이러니 병사들의 사기가 높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같이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았으니 오기가 지휘하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만큼 솔선수범하는 장수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사기>에는 워낙 오기가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이마저도 고도의 위선적인 행동이 아닌가 의심이 드는 것이다.
오기는 자신이 맡은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 한 것 같다. 오기는 말년에 초나라에서 재상이 되었다. 오기는 법령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긴요하지 않은 관직을 없애고, 귀족들의 특권을 없애는 등 개혁 정치를 하면서 초나라를 강성하게 만들었다. 이런 조치는 기득권층의 반발을 불렀고 대신들은 오기를 죽이려고 했다. 마침 초나라 도왕(悼王)의 임종 무렵이었다. 반란군이 몰려오자 오기는 도왕의 시신 위에 엎드렸다. 이때 오기를 공격하던 무리가 쏜 화살이 오기를 죽였지만 도왕도 맞추었다. 태자가 즉위하자 왕의 시신에 화살을 쏜 행위에 연루된 자들은 전부 사형을 시켰다. 오기는 죽으면서도 복수를 한 셈이다.
오기는 능력이 출중하지만 인심을 얻지는 못했다. 사마천은 이렇게 적었다.
"오기의 행실이 각박하고 잔혹하며 인정이 적었으므로 자신의 목숨을 잃었으니 슬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