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안회에 대해 말했다.
"어질구나, 회여! 한 통의 대나무 밥과 한 표주박의 마실거리로 누추한 뒷골목에 살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그 근심을 견뎌 내지 못할 텐데, 안회는 자기가 즐겨 하는 바를 바꾸지 않는구나!"
"안회는 배울 때 듣고만 있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물러가 홀로 지내는 것을 살펴보면 또한 내가 해 준 말들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었다. 안회는 어리석지 않구나!"
"등용되면 나아가고 버려지면 숨는 사람은 오직 나와 너뿐이구나!"
안회는 스물아홉에 머리가 하얗게 세더니 젊은 나이에 죽었다. 공자는 제자의 죽음을 슬퍼하여 소리 내어 울면서 말했다.
"네게 안회가 있은 뒤부터 제자들이 나와 더욱 친숙해졌다."
노나라 애공이 공자에게 물었다.
"제자들 중에서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안회라는 자가 있어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는데, 불행하게도 젊은 나이에 죽었습니다. 지금은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가 없습니다."
- 사기 7-1,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
중니제자열전에서는 공자의 제자 77명을 소개한다. 사마천은 기록으로 전해지는 29명의 언행을 남겼고, 나머지 48명은 이름 정도만 밝히고 있다.
사마천이 첫 번째로 소개하는 제자가 안회(顔回)다. 안회는 자가 자연(子淵)이며 공자보다 서른 살 아래였다. <논어>에 보면 안회만큼 공자한테서 칭찬을 받은 제자는 없다. 공자가 가장 아낀 수제자라 할 만하다. 아깝게도 일찍 죽었는데 스승인 공자가 슬퍼하며 통곡했다고 전한다.
안회에게서는 유가보다는 오히려 도가에 가까운 느낌을 받는다. <장자>에서 공자는 맹렬하게 비난하는데 안회에게는 너그럽다. 안회는 앞에 나서지 않는 덕행의 실천자다. 그래서 두루 인정을 받는 것 같다.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우칠 정도로 총명했고, 다른 제자들도 안회는 존중해 주었던 것 같다. 공자 집단에서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한 셈이다. 반면에 자로나 자공은 실질적인 도움을 준 행동파로 대비된다.
안회가 스물아홉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는 사실을 두고 그가 얼마나 노심초사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는 해석을 봤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안회에게는 '일단사일표음(一簞食一瓢飮, 한 통의 대나무 밥과 한 표주박의 마실거리)'이 근심이나 고통이기보다는 즐거움이었을 것이다. 안회를 대표하는 낱말은 '호학(好學)'이다. 그는 인간 완성의 길을 치열하게 살아간 구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