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사기[1]

샌. 2023. 6. 29. 09:20

요즘 시대에 들어서면서 하는 행동은 규범을 따르지 않고 오로지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한평생을 편안하게 즐거워하며 대대로 부귀가 이어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땅을 가려서 딛고, 말을 할 때도 알맞은 때를 기다려하며, 길을 갈 때는 작은 길로 가지 않고, 공평하고 바른 일이 아니면 떨쳐 일어나서 하지 않는데도 재앙을 만나는 사람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나는 매우 당혹스럽다. 만일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라면 옳은가? 그른가?

 

- 사기 1, 백이열전(伯夷列傳)

 

 

이제부터 <사기>을 읽는다. 우선 접근하기 용이한 '열전'에서 시작한다. '열전'은 전에 읽어본 적이 있어서 무리가 없을 것 같다. 텍스트는 김원중 선생이 옮기고 민음사에서 나온 <사기>다.

 

총 70편의 '열전' 중 첫 번째 편이 백이열전이다.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BC 1000년 경 은나라 말기에 고죽국(孤竹國) 군주의 두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둘 중에서 아우인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형에게 양보하고 도망쳤고, 형인 백이 역시 아버지의 명령이라면서 왕위를 거절하고 달아났다. 뒤에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우자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수양산으로 숨어들어가 고사리를 뜯어먹으며 살다가 굶어 죽었다. 백이와 숙제는 충절의 표상으로 - 특히 유가에서 - 추앙받는 인물이다.

 

사마천이 '열전'의 첫 번째 편으로 백이를 선택한 것은 의미가 있다. 사마천 개인의 감정이 들어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백이와 숙제는 의를 지키고 인을 행하며 행실을 깨끗하게 하고 살아도 굶어 죽었다. 반면에 법을 어기면서 남에게 해코지를 하는 악인은 호의호식하며 산다. 사마천은 묻는다. 이 세상에 "하늘의 도가 있는가? 없는가?" 아마 사마천이 궁형을 당한 후 수백 번도 더 물었을 질문일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안연과 도척이다. 학문과 행실이 으뜸이었던 공자의 수제자 안연(顔淵)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보답을 베푼다면 어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가? 반면에 도척(盜跖)은 사람을 죽이고 잔인한 짓을 했지만 자신의 수명을 누리며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다. 노자는 말했다. "하늘이 그물이 엉성해 보여도 결코 놓치지 않는다." 안연과 도척의 경우처럼 천도(天道)가 과연 있는지, 또는 옳은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지만 대부분은 잊히고 말았다. 긴 역사에서 백이와 숙제가 어디 한둘이었겠는가. 사마천은 <사기>를 쓰면서 이런 사람들의 사연을 드러내고 싶었을 것이다. 선인들의 삶은 오늘의 우리에게 위로와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마천 개인에게도 절실히 필요하기도 했을 것이다. 사마천은 과연 백이 숙제가 억울한 마음을 품지 않았을까를 묻는다. 사마천은 <사기>를 쓰면서 옛사람과의 감정이입을 통해 자신의 울분을 달랬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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