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땅속에서, 땅 위에서
공중에서
생명을 만드는 쉬임 없는 작업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부지런해라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
봄은 피어나는 가슴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
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나뭇가지에서, 물 위에서, 뚝에서
솟은 대지의 눈
지금 내가 어린 벗에게 다시 하는 말이
항상 봄처럼 새로워라
- 해마다 봄이 되면 / 조병화
어느 자리에선가 미당 얘기가 나왔을 때, 국어 선생님이신 S 형이 이런 얘기를 해 주었다. S 형은 미당을 시의 사부님으로 여길 정도로 미당 시를 흠모하시는 분이시다. 수업 시간에 '국화 옆에서'를 최고의 찬사를하며 설명하고 나왔더니 한 학생이 교무실에 따라와서 항의하더란다. 미당의 일제 시대 행적을 알면서 어떻게 그의 시를 칭찬할 수 있느냐고, 선생님에게 실망했다면서 얼굴을 붉히더라는 것이었다.그래서 선생님도 그분의 행적은 미워한다, 그러나 시는 시 자체로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겨우 달랬다는 경험담이었다.
봄이면 생각나는 이 시를 보면서 문득 S형의 얘기가 떠올랐다. 조병화 시인도 그런 과거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1980년에 전두환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는 시를 신문에 실었다. '참신과감한 통치자 / 이념투철한 통치자 / 정의부동한 통치자 / 인품온화한 통치자 / 애국애족 사랑의 통치자 / 오, 통치자여! 그 힘 막강하여라' 등의 내용으로 된 시였다. 당시는 518 광주 항쟁을 진압하고 난 뒤의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절정기였다. 이런 찬양시를 쓴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과연 작품으로서의 시와 시인은 어느 정도까지 연결하거나 구별할 수 있을까?시를 시 자체로서만 만나는 것이 가능할까?
당시 그 자리에서도 사람들 간에 의견이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국어를 전공한 S 형은 시인과 시는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의 진정성이라는 측면에서 시인의 삶과 유리된 시는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자신은 호의호식하면서 무소유를 말한다면그 말을 받아들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최고의 시는 말이나 글이 아니라 삶 자체이다. 물론 인간으로서 흠결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진실을 왜곡하고 정권에 아부하는 것은 시인이 할 노릇은 더구나 아니다. 만인의 사표가 되는 대시인의 언행은 그래서 중요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오늘은 두 눈 감고 이 시를 읽는다. 봄이기 때문이다. 진달래, 개나리가 나오려 하는 이때, 온 마을에 암내가 진동하는 이때, 좌우든, 상하든, 진보나 보수든, 그 어떤 논쟁들이든, 이 꽃들의 암내에 쓰러지거라. 마치 내 인생의 첫봄인 것처럼, 내 가슴 설레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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