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그랬으면 좋겠네 / 이시하

샌. 2010. 3. 30. 10:17

애인이 빨리 늙어 소처럼 느리고 순해지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느지막이 일어나 찬 없는 밥을 우물우물 먹고 나서 산수유 꽃 피었드만, 그거나 보러 가지, 그랬으면 좋겠네 사람구경도 참 쏠쏠하구먼, 천천히 걷지 뭐, 그랬으면 좋겠네 강 언덕에 시름도 없이 앉아서는 노을빛이 퍽 곱구먼, 그랬으면 좋겠네 주름진 내 손을 슬쩍 당기며 거 참, 달빛 한번 은근하네, 그랬으면 좋겠네


애인이 빨리 늙어 꾀병 같은 몸사랑은 그만두고 마음사랑이나 한껏 했으면 좋겠네 산수유 그늘 아래 누워 서로의 흰 머리칼이나 뽑아주면 좋겠네 성근 머리칼에 풀꽃송이 두엇 꽂아놓고 킥킥거렸으면 좋겠네 빨리 늙은 애인이 허허 웃으며 주름진 이마나 긁적거리면 좋겠네 아직두 철부지 소녀 같다고 거짓농이나 던져주면 좋겠네 한세상 흐릿흐릿 늙어 가는 게 싫지는 않냐 물으면 흥, 흥, 콧방귀나 뀌었으면 좋겠네


- 그랬으면 좋겠네 / 이시하


지셴린(季羨林)이 쓴 <인생>을 읽고 있다. 아흔이 된 노학자가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며 관조하듯 담담히 쓴 책이다. 글이 진솔하고 부드러우며 깊은 울림이 있다. 주변에서는 추한 노인도 가끔 접하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품위 있게 늙을 수도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희망인지 모른다. 선생은 중국인의 애도 속에 작년에 98세로 세상을 뜨셨다.이 시도 마찬가지다. 나이 든다는 것이 이렇게 따스하고 원숙해지는 것이라면 어서 빨리 늙어보고도 싶지 않은가. 천명을 아는 지혜로운 노인이 되고 싶다. 책 속에 ‘아흔을 술회한다’는 제목의 글이 있다. 그중 일부를 옮긴다.


‘....... 이제 쉴 때가 된 듯하다. 나에게도 집이 있다. 사람들 마음속에 집은 정박해서 쉴 수 있는 가장 아늑한 항구가 아닌가 한다. 나의 집에는 다른 식구들이 없다. 내가 곧 집이요, 내 한 몸 건사하기만 하면 된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외로울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에게는 고향 린칭에서 데려온 두 눈 색이 다른 흰 고양이가 있기 때문이다. 생기발랄하고 귀여우며 음식을 몰래 훔쳐 먹기를 즐기는 이 고양이는 내 목을 타고 올라오는 등 제멋대로다. 간혹 내 바짓가랑이에 오줌을 누기도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것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 녀석이 제멋대로 굴도록 내버려 둔다.


고양이 말고 또 다른 가족이 있는데 초등학교 동창한테서 받은 거북이 두 마리다. 오늘날에는 그다지 인기가 없지만 옛날에 거북이는 장수의 상징이었다. 이름을 지을 때도 '거북 귀龜'자를 즐겨 사용했는데 당唐대 인물인 이귀년李龜年, 육귀몽陸龜蒙 등이 그 예다. 거북이를 키우는 재미도 적지 않다. 먹이를 주면 목을 내밀고 한입씩 받아먹는 모습을 보노라면 그렇게 귀여울 수 없다. 다만 이 녀석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 집에는 고양이와 거북이 말고도 자라 다섯 마리가 있다. 보통 사람들은 자라를 '왕바王八'라고 부르는데 이 말은 입에 담기도 민망할 정도의 욕설과 발음이 같다. 나는 이 자라들을 큰 도자기 항아리에 키우며 어떤 차별 대우도 하지 않는다.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일까? 아니다. 병원에 가서 검사할 필요 없이 나는 아주 멀쩡하다. 나는 자라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동등한 생존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라를 '왕바'라고 부르며 모욕을 주고 더러운 물을 끼얹는다. 그러나 자라는 아무것도 모른다. 세계 어느 법원에도 인간들을 고소하지 않았으며 명예 훼손을 이유로 보상금을 바라거나 성명서를 내지도 않았다.


....... 나는 나 자신을 다른 사물과 비교하길 즐긴다. 지금의 나는 시끄러운 소리로 우는 매미가 된 것 같다. 매미는 유충 때 땅속에 있다가 황혼녘 나무를 기어올라 날이 밝으면 허물을 벗는다. 그리하여 시인 왕유王維가 읊은 것처럼 "지팡이 짚고 사립문 밖에 서서 바람을 쏘이며 듣는 저녁 매미"가 된다. 나는 지금 시끄러운 매미처럼 명성이 높아져 '문화대혁명' 때 썼던 모자보다 더 높은 월계관을 쓰고 있는 듯해 부끄러울 때가 많다. 나에 관해서는 내가 더 잘 아는데 그리 대단할 것이 없다. 그러나 내가 진심으로 이렇게 말해도 다른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집이 늘 떠들썩하니 조용할 날이 없다. 매일같이 오래된 친구들이 찾아와 이 일 저 일을 부탁하고 눈이 침침한 나를 대신해 신문과 편지를 읽어주기도 한다. 나를 숭배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전화와 방문도 끊이지 않는다. 내 나이가 많아서 모든 방문객을 맞을 수는 없다고 학교 관계자들이 대문에 써 붙여 두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전화를 하거나 방문하는 사람들 말고도 카메라를 들고 인터뷰를 청해 오는 방송국 PD와 기자들도 있으며, 날마다 수많은 편지와 우편물이 쌓인다. 젊은 학생들은 내가 어떤 부탁이든 들어줄 수 있는 신이나 정확한 판단을 내려줄 선지자라도 되는 듯이 찾아와 이것저것을 묻고 부모에게 말 못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소일거리를 찾아온 동료들이 나를 대신해 이런 일들을 처리하고, 면담이나 촬영을 청하는 손님들에게는 핑계를 대거나 느긋이 기다리라고 설득하기도 한다. 이처럼 번잡하고 힘든 일도 없을 것이다.


친구를 사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내 새로운 벗들은 저명한 서예가나 화가, 시인, 작가, 교수들이다. 나는 그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우정을 쌓지만 그들에게 무엇을 바라지는 않는다. "인연이 있으면 천 리 밖에서도 만날 수 있지만, 인연이 없으면 지척에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는 말처럼 인연이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이 친구들과 인연이 있어 만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처음 만나자마자 오랜 친구처럼 느껴졌으며 무슨 말이든 터놓고 나눌 수 있었다. 만나지 못하면 그리워하고, 만나면 물 만난 고기처럼 마음이 탁 트이고, 헤어지고 나면 또 보고 싶어졌다. 그들은 친척은 아니지만 내게는 친척보다 더 가까운 사람들이다. 일생에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知己를 한 명 얻으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이런 벗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니 사는 것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나는 천성이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사람으로 수십 년 된 습관을 고치기는 더욱 힘든 사람이다. 나는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남색 중산복을 고집한다. 이런 나를 두고 사람들은 '고집쟁이 늙은이'라 부르지만 나는 스스로를 '박물관'이라고 칭한다. 생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나는 50년이 넘도록 매일 새벽 네 시면 일어난다. 옛 선현께서 사람은 동틀 녘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하셨는데 나는 이를 잘 따르고 있다. 겨울이면 해뜨기 몇 시간 전에 일어나 새벽 다섯 시에는 아침 식사를 마쳤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바로 일을 시작하는데 주로 글을 쓰는 일이었다.


나는 수십 년 동안 수천만 자의 글을 썼으며 이것이 매우 가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쓴 글이 모두 완벽하고 먹음직스러워 삼키기만 하면 승천해 신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독이 없고 거짓 없는 것들이다. 내 글을 읽고 나면 적어도 고향, 조국, 인류, 자연, 아이들 등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나고 즐거움을 느끼며 정신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내가 밥을 먹는 것은 살기 위해서이지 먹기 위해 사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일생은 길지 않으니 낭비해서는 안 된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무런 소득 없이 잠자리에 들 때면 죄책감을 느끼는데 자살할 때의 심정이 이러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글쓰기에 매달리는 것은 무슨 명예와 이익을 얻고자 함일까? 고백하건대 건에는 그런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나에게 명예와 이익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지금 이렇게 글쓰기에 전념하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래된 습관 때문이다. 이 나이에 명리名利는 뜬구름에 지나지 않는다.


누군가 나에게 죽음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물은 적이 있다. 당연히 생각해보았다. 전에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지금은 더 자주 생각한다. 문화혁명 시절 1967년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다행히 나는 죽음의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그 후 내게는 하루하루가 덤으로 주어진 삶이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 30년이 넘었으니 어떤 의미에서 나는 참 '부자' 늙은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죽음 앞에서 특권을 지니지 못한다. 황천길에는 노소老少가 따로 없다지만 오래 산 노인이 황천길에 더 가까움은 분명하다. 베이징대학교 교정은 장수하는 노인들의 천국이나 다름없다. 내 나이 이미 아흔 중반을 넘었지만 나이순으로 따지면 나는 열손가락 안에도 들지 못한다. 만약 나이순으로 팔보산 혁명공동묘지로 향한다면 나는 앞에 서려고 다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도연명의 시구 중 "커다란 격랑 속에서도 기뻐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네. 해야 할 일은 다 마쳤으니 더는 걱정하지 마시게"를 좌우명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이 말처럼 살지 못했다. 나는 친구가 선물해준 탁자 위의 기석奇石을 보면서 왜 저 돌과 같이 영원히 살지 못하고 죽음을 맞아야 하는가 생각하기도 한다. 조물주가 시간을 멈추게 하여 태양과 달리 영원히 빛나고 땅 위의 모든 생물이 늙지 않았으면 하는 상상도 해본다. 그렇지만 죽음이 두려워서 이런 생각과 상상을 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 말기를 바란다.


인간은 모순으로 가득 찬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은 사고하지 않으므로 모순에 휩싸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나는 사람인지라 마음속의 모순들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인생에 미련이 남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는 것이 힘겨워 쉬고 싶을 때도 있다. 장자 또한 "하늘이 나에게 이 몸을 주신 것은 힘들게 하려 함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던가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으니 오해는 말기 바란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내 삶은 만족스러워 보일 것이다. 뜻밖에 많은 명예를 얻었으며 손가락질 당할 일을 하지도 않았다. 주위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웃는 모습으로 맞아주니 내 마음도 훈훈해진다. 모든 일들이 이처럼 순조로우니 어찌 만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솔직히 말해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옛말에도 세상일이란 십중팔구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참 맞는 말인 것 같다. 살다 보면 불쾌하고 괴로운 일들을 겪게 마련이다. 어떤 때는 모든 일이 순조로운데도 자신은 정작 힘겨울 때가 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늙은 소인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매일 신선한 우유를 뿜을 수 있는 크고 살찐 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미 많은 우유를 짜내어 몸이 쪼그라들었는데도 독촉하면 더 짜낼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상황이 이러하니 쉴 생각조차 할 틈이 없다.


나는 참 오래 살았다. 거의 한 세기에 이르는 시간이다. 90여 년 전 산둥 성 린칭 현의 작고 가난한 관사에서 태어나 지난濟南, 베이징 그리고 독일에 머물렀다. 몇 개의 대륙과 수많은 나라들을 돌아다녔으니 지구를 몇 바퀴는 돌았을 것이다. 이집트 피라미드, 중동 문명의 발상지인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인도 타지마할,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및 국내외 수많은 명산대천을 둘러보았다. 현지 정부가 제공하는 고급 숙소에 묵기도 했고 여러 대통령, 총리 등 고위 인사들도 만나보았다. 굉장하고 대단한 일처럼 보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걸은 길이 모두 그렇게 평탄하고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난관도 적지 않았다. 첩첩산중을 걸을 때도, 아름다운 봄날 같은 때도 있었다. 밝고 큰 길을 걷기도 하고 외나무다리를 아슬아슬 건널 때도 있었다. 나는 꼬불꼬불하고 울퉁불퉁한 길을 가다 넘어지고 다치면서 드디어 이곳에 이르렀다. 지금은 베이징대학교 랑룬위안의 창가에 앉아 아흔을 술회하는 이 글을 쓰고 있다.


창밖은 이미 한겨울이다. 여름 햇살이 비추던 연꽃의 얼마 남지 않은 마른 잎이 찬바람에 흔들리고, 목련나무도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추위를 견디고 있다. 그러나 나는 연꽃 밑 진흙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리고 목련나무의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봄의 꿈을 알고 있다. 그 꿈들은 지금 잠시 쉬고 있을 뿐 여전히 살아 있다. 힘을 모아 새로운 1,000년이 시작되는 해에 아름다운 꽃을 피울 것이다. 나도 루쉰 선생의 산문 속 '과객'처럼 앞으로 계속 걸어가야 한다. 앞은 노인이 말한 무덤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여자아이가 본 것처럼 백합꽃이 피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여든을 술회하다」라는 글을 쓸 무렵에는 백합이 무덤보다 더 많이 보였는데 지금은 무덤이 꽃보다 더 많이 보인다. 앞에 있는 것이 무덤이든 백합이든 가는 길을 멈출 수는 없다. 펑여우란 선생은 "어찌 미수米壽에만 머물까"라고 말했는데, 나는 이미 미수를 넘어 다수茶壽를 기약하고 있다. 지금 내 앞에는 끝이 멀지 않은 하나의 길이 있을 뿐이다. 10년이 지나 「백 살을 술회하다」를 쓸 때면 다수도 멀지만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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