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고산지대에 핀 말나리꽃의 줄기다 빈집 절구독에 고인 빗물에 비치는 낮달이다 붙박이별을 이정표 삼아 비탈길을 가는 나귀 걸음걸이다 너는 무명천에 물들인 쪽빛이다 노인정 앞 평상에 내려앉은 후박나무 잎사귀다 - 나의 거처 / 김선향 꽃과 잎을 주목하지 줄기를 살피는 사람은 거의 없다. 말나리꽃의 '줄기'다, 라는 독백에서는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결연한 고독이 감지진다. 더구나 고산지대에 핀 말나리꽃의 줄기다. 다른 연이 주는 느낌도 비슷하다. 무욕(無欲) 하기에 당당하게 외로울 수 있다. 시인의 걸음에서는 묵향이 풍긴다. 제목은 '나'이지만 시에서는 '너'라고 한 것도 재미있다. '우리'의 거처는 마땅히 이래야 하리라는 은유 같다. 이런 집 한 채 짓고 살면 어떤 호화 저택이 부러우랴. 김선향 시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