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봉우리 만 골짜기 그 너머로 한 조각 구름 밑 새가 돌아오누나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다음 해는 어느 산 향해 떠나갈거나 바람 자니 솔 그림자 창에 어리고 향 스러져 스님의 방 하도 고요해 진작에 이 세상 다 끊어버리니 내 발자취 물과 구름 사이 남아 있으리 - 저물 무렵 / 김시습 萬壑千峰外 孤雲獨鳥還 此年居是寺 來歲向何山 風息松窓靜 香銷禪室閑 此生吾已斷 棲迹水雲間 - 晩意 / 金時習 새벽 안개가 낮이 되도록 자욱하다. 그저께 내린 첫눈의 자취가 남아 있는 뒷산도 안개 속에 잠겨 있다. 계절도 나이도 쓸쓸히 저물어간다. 저잣거리를 기웃거리지 말고 더 고독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책을 불사르고 방랑의 길에 오른 매월당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