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 29

수입리 은행나무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입리에 있는 은행나무다. 북한강과 연결되는 벽계구곡이 흐르는 동네다. 나무는 전의이씨 청강공파 묘역에 있다. 종중 땅으로 보이는 주변은 손질이 잘 되어 있다. 이 은행나무는 수령이 약 500년이고, 높이는 20m, 줄기 둘레는 6.5m다. 균형 잡힌 모양새로 전지를 한 듯 말끔하다. 나무 뒤로는 전의의씨 청강공파 묘가 22기 있다. 이 은행나무도 초기 묘역 조성과 관계가 있을 듯 싶다. 종중에서 관리하는 보호수로 묘역의 수문장처럼 우뚝 서 있다.

천년의나무 2018.11.30

달 착륙 조작이 가능한가

과거에 물리 선생을 하다 보니 현장에 있을 때 아이들로부터 달 착륙이 조작된 게 아니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실제 달 착륙을 생중계로 지켜본 나로서는 인간이 달에 발을 디딘 사실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어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무엇이건 의문을 품고 검증하는 것은 좋지만,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너무 쉽게 가짜로 단정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달에 갔다 오는 자체가 워낙 기적 같은 일이다 보니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 조작이라고 믿어버리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한 것 같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달 착륙 조작이 과연 가능할까. 아폴로 11호부터 17호까지 달에 간 우주인이 열 명이 넘는다. 그들과 직접 관계된 사람이 수백 명은 될 것이다. 음모론자 주장대로 달 착륙 장면이 세트장에서 촬영되었다면 그 과정에 관..

길위의단상 2018.11.29

퍼스트 맨

인간이 달에 첫발을 디딘 지 50주년이 되는 해가 내년이다. 아폴로 11호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1969년 7월, 인류가 최초로 달에 갔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다. 신문에 난 아폴로 기사를 모두 스크랩하면서 나는 우주과학자가 되는 꿈을 꾸었다. 7월 20일, 암스트롱이 달에 내려서는 모습을 TV로 보던 흥분은 잊히지 않는다. 이 영화 '퍼스트 맨(First Man)'은 최초로 달에 첫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과 아폴로 11호 이야기다. 우주 경쟁에서 소련에 뒤진 미국은 국력을 집중하여 달 정복에 나선다. 1961년에 케네디 대통령은 선언한다. "우리는 달에 가기로 했습니다(We choose to go to the Moon)." 이 장면이 영화에도 나오는데, 달에 가는 것이 쉬워서가 아니라 어렵기 ..

읽고본느낌 2018.11.28

바다의 경고

인간종을 나타내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저 스스로 '지혜롭다'는 명칭을 부여했으니 이만저만 자가당착이 아니다. 까놓고 말해 '지혜롭다'고 하기보다는 '어리석다'라고 하는 게 더 옳다. 하는 짓을 보면 말이다. 일주일 전에 인도네시아 해안에서 죽은 향유고래가 발견되었다. 사인을 알아보기 위해 배를 해부해 보니 몸속은 온통 쓰레기 천지였다. 슬리퍼를 포함해서 플라스틱 컵만 115개가 나왔고, 비닐봉지와 플라스틱병을 합하니 6kg이 넘었다. 사흘 전에는 우리나라 부안 앞바다에서 잡은 아귀 뱃속에서 500ml 페트병이 나왔다. 죽은 물고기를 찍은 두 사진은 끔찍했다. 공기와 물을 더럽히더니 이제는 바다까지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게 인간이다. 제 살아갈 터전을..

참살이의꿈 2018.11.27

저물 무렵 / 김시습

천 봉우리 만 골짜기 그 너머로 한 조각 구름 밑 새가 돌아오누나 올해는 이 절에서 지낸다지만 다음 해는 어느 산 향해 떠나갈거나 바람 자니 솔 그림자 창에 어리고 향 스러져 스님의 방 하도 고요해 진작에 이 세상 다 끊어버리니 내 발자취 물과 구름 사이 남아 있으리 - 저물 무렵 / 김시습 萬壑千峰外 孤雲獨鳥還 此年居是寺 來歲向何山 風息松窓靜 香銷禪室閑 此生吾已斷 棲迹水雲間 - 晩意 / 金時習 새벽 안개가 낮이 되도록 자욱하다. 그저께 내린 첫눈의 자취가 남아 있는 뒷산도 안개 속에 잠겨 있다. 계절도 나이도 쓸쓸히 저물어간다. 저잣거리를 기웃거리지 말고 더 고독해져야 하지 않겠는가. 책을 불사르고 방랑의 길에 오른 매월당을 생각한다.

시읽는기쁨 2018.11.26

논어[317]

선생님 말씀하시다. "예법이니 예법이니 하지만 구슬이나 비단인 줄 아느냐? 음악이니 음악이니 하지만 종이나 북인 줄 아느냐?" 子曰 禮云禮云 玉帛云乎哉 樂云樂云 鐘鼓云乎哉 - 陽貨 10 예법에는 구슬이나 비단이 필요하고, 음악에는 종이나 북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구슬과 비단을 가지고 싸우고, 어떤 종과 북을 쓸지를 놓고 다툰다. 내용은 사라지고 껍데기를 가지고 논쟁을 하는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바라보는 격이다. 조선 시대의 예송논쟁이 대표적이다. 결국은 반대 정파를 숙청하는 논리로 써먹기도 한다. 무엇이든 고유 정신을 잃으면 위기가 찾아온다. 썩은 웅덩이에 물꼬를 트는 것이 혁명이고 개혁이다. 인간 정신의 역사도 변증법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게 아닐까.

삶의나침반 2018.11.25

첫눈, 낮술과 낮잠

올 첫눈이 화끈하게 내렸다. 첫눈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한 작년과는 달랐다. 올해 껑충 키가 자란 소나무 위에 석 달 전 문 닫은 빵집 간판 위에 집 앞 도로에는 헛바퀴 도는 승용차가 한참을 씨름하고서야 빠져 나간다. 겨울이 도래했음을 실감한다. 아내는 부침개를 굽고, 나는 연태고량주를 꺼낸다. 금방 바닥이 난다. 불 올리고 달콤한 낮잠 속으로 들어가야겠다.

사진속일상 2018.11.24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자서전이다, '환상의 빛'을 시작으로 20년 넘게 영화를 만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를 찍으며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지에 대한 고민을 진솔하게 밝힌다. 실제 영화계에 있는 사람에게는 좋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자서전이라고 해서 고레에다 감독의 성장기나 일대기를 기대한다면 실망할지 모른다. 에는 오직 영화에 관련된 이야기만 나온다. 영화를 제작한 시대순으로 각 작품을 설명한다. 감독이 어떤 생각으로 영화를 찍었는지 알게 되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고레에다 감독의 대표 영화는 다음과 같다. 환상의 빛(1995) 원더풀 라이프(1998) 아무도 모른다(2004) 걸어도 걸어도(2008) 공기인형(2009)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 그렇게..

읽고본느낌 2018.11.23

말 많은 수능

올 수능도 뒷말이 많다. 고작 몇백 명 대상의 학교 시험에서도 이러쿵저러쿵 시빗거리가 생기는데 한꺼번에 60만 명이 시험을 치르는 수능은 오죽하겠는가. 쉬우면 쉬운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뒷말이 안 생긴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가장 논란이 된 문제는 국어 영역 31번이다. 한 페이지에 걸쳐 긴 지문이 나오고 그에 딸린 문제가 여섯이다. 그중에 31번이 너무 어렵다고 해서 아우성이다. 도대체 어떤 문제인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우선 지문이 이렇게 길다. 근세에 등장한 동서양 우주론에 대한 설명이다.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은 상당히 난해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 31번이 나온다. 이 문제를 보니 만유인력 개념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만유인력은 두 질량의 ..

길위의단상 2018.11.21

엄미리 참나무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에 있는 엄미리는 장승마을로 불린다. 격년으로 마을 장승제가 있는데 올해는 11월 하순에 열린다는 현수막을 보았다. 장승제를 지내는 장소가 바로 이 200년 된 참나무 앞이다. 나무 앞에는 지난 장승제 때 세운 장승이 도열해 있다. '천하대장군' 장승인데 '수원 70리' '서울 70리'라 적힌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이 참나무의 높이는 21m, 줄기 둘레는 3.3m다. 갈참나무로 보이는데 정확히는 확인하지 못했다. 대단해 보이지는 않아도 참나무 종류가 200년이 되었으면 상당한 연륜이다. 숲을 잘 관리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천년의나무 2018.11.20

내가 가장 예뻤을 때 / 이바라기 노리코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는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생각지 못한 곳에서 파란 하늘 같은 게 보이기도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을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눈길을 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청결한 눈짓만 남기고 모두 떠나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 머리는 텅 비어 있었고 내 마음은 무디었으며 손발만이 밤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우리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어이없는 일이 있을까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쏘다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선 재즈가 넘쳤다 담배연기를 처음 마셨을 때처럼 현기증이 났다 나는 이국의 음악을 마음껏 즐겼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

시읽는기쁨 2018.11.19

논어[316]

선생님이 백어에게 말씀하시다. "'주남'과 '소남'의 시를 공부했느냐? 사람이 '주남'과 '소남'의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마치 담장에다 낯을 맞대고 섰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子謂伯魚曰 女爲周南召南矣乎 人而不爲周南召南 其猶正牆面而立也與 - 陽貨 9 '주남'과 '소남'은 의 한 부분이다. 아들에게 하는 말을 통해 시 공부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 앞에서 시 공부의 실용적인 이득을 말했다면, 여기서는 부정적인 측면을 밝힌다. 시 공부를 안 하면 담장에다 낯을 대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자기 눈이 생기지 않는다. 앞에서 '詩可以觀'이라 한 부분과 연결된다. 지식으로 아는 것은 남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시나 예술을 포함한 인문적 소양만이 자기 눈을 뜨게 한다.

삶의나침반 2018.11.18

트레커와 남한산성을 걷다

1년 2개월 만에 트레커 산행에 동행했다. 마침 남한산성을 온다기에 남한산 정상부에서 합류해서 광주 엄미리로 내려왔다. 트레커 팀은 서울 거여동에서 출발하여 서문을 거쳐 왔고, 나는 엄미리에서 올라 약속 장소에서 만났다. 내려온 길은 처음 걸어보는 능선길로 길이 순해서 앞으로 자주 이용하게 될 것 같다. 엄미리와 남한산을 연결하는 능선은 세 개가 있다. 라운딩할 수 있는 코스가 다양해졌다. 산행 후 점심을 한 은고개의 두부전골집도 새로이 알게 된 맛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두 가지 수확이었다. 산길에서 재회한 트레커의 옛 얼굴이 반가웠음은 물론이다.

사진속일상 2018.11.17

역사의 역사

유시민 작가의 역사 교양서다. 이 책은 역사서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영어로 표현하면 'History of writing history'다. 수많은 역사서 중에서 대표적인 역사서를 고르고, 그 책을 집필한 역사가와 정신,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설명한다. 인간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다루어왔는지 개관하는 데 유익하다. 동시에 '역사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응답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해왔는지도 볼 수 있다. 에 등장하는 역사서는 다음과 같다.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사마천 이분 할둔 레오폴트 폰 랑케 카를 마르크스 신채호 박은식 에드워드 H. 카 토인비 슈팽글러 새뮤엘 헌팅턴 제레드 다이아몬드 유발 하라리 이 중에는 읽은 책도 있지만, 대부분은 제목만 들어본 정도다. 는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 필..

읽고본느낌 2018.11.16

공세리성당 보호수

공세리성당에는 세 종 여섯 그루의 보호수가 있다. 느티나무가 네 그루, 팽나무와 피나무가 각 한 그루다. 본당 앞과 옆에 있는 팽나무와 느티나무는 수령이 300년이 넘으며 누구의 눈에나 잘 띈다. 본당 건물과 멋진 조화를 이루는 나무다. 이번에 공세리성당에 간 길에 다른 나무도 함께 찾아보았다. 먼저, 성당에 들어서면서 입구에 있는 느티나무다. 수령이 250년으로 높이 21m, 둘레 3.9m다. 노쇠한 탓에 치료중이다. 쌍둥이라 불리는 두 그루 느티나무가 있다. 수령은 250년 정도로 추정된다. 현 성당이 건축되기 전 옛 성당 옆에 있어서 교우들이 이 나무 아래서 쉬었다 한다. 수령이 150년 정도 되는 피나무다. 높이는 20m, 둘레는 2.8m다. 피나무가 있다는 것은 이곳이 전에는 야산이었다는 증거일..

천년의나무 2018.11.15

성지(12) - 요당리성지

18. 요당리 성지 수원교구에 속한 요당리 성지는 장주기 요셉 성인의 탄생지이며 성장지다. 요당리는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의 신자들이 피난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으로 추정한다. 장주기(張周其, 1803~1866) 성인은 요당리에서 태어나 1826년 경에 세례를 받았고, 박해를 피해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1843년부터 제천 배론에 정착했다. 신학당을 위해 자기 집을 학교 건물로 내주었으며, 자신은 한문 교사와 공소 회장으로 활동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사형 선고를 받고 충청도 갈매못에서 64세의 나이로 참수 치명하였다. 이곳 요당리 성지에서 태어났거나 순교한 분들 가운데는 장주기 요셉 성인 외에 복자 장 토마스 등 여러 명이 있다. 또한 교회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전답이 민극가 스..

사진속일상 2018.11.15

누비길 대신 청계산

누비길 5, 6구간은 생략하고 대신 청계산에 올랐다. 5, 6구간은 구간 길이나 교통편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용두회에서는 그동안 가벼운 산길만 걷다가 오랜만에 제대로 된 산행을 했다. 원터골에서 진달래능선으로 올라가 매봉, 망경대, 이수봉을 지나 옛골로 내려갈 계획이었으나 다들 힘들어 해서 혈읍재에서 내려가는 단축 코스를 택했다. 평상시에 산을 다니지 않으니 오백 미터급도 벅찬 건 당연하다. 이 코스도 네 시간이 걸렸다. 산에 게을러진 건 나도 마찬가지다. 올해처럼 산과 멀어진 적도 없다. 기록을 보니 올 등산이 네 차례밖에 안 된다. 내색을 안 했을 뿐이지 이젠 청계산도 벅차다. 다리 근육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하는 법이다. 좀 더 부지런해지자고 다짐한다.

사진속일상 2018.11.13

이곳에 숨어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 송찬호

이곳에 숨어산 지 오래되었습니다 병이 깊어 이제 짐승이 다 되었습니다 병든 세계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황홀합니다 이름 모를 꽃과 새들 나무와 숲들 병든 세계에 끌려 헤매다보면 때로 약 먹는 일조차 잊고 지내곤 합니다 가만, 땅에 엎드려 귀대고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를 듣습니다 종종 세상의 시험에 실패하고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습니다 몇 번씩 세상에 나아가 실패하고 약을 먹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가끔씩 사람들이 그리우면 당신들의 세상 가까이 내려갔다 돌아오기도 한답니다 지난 번 보내주신 약 꾸러미 신문 한 다발 잘 받아보았습니다 앞으로는 소식 주지 마십시오 병이 깊은 대로 깊어 이제 약 없이도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병든 세계를 헤매다보면 어느덧 사람들 속에 가 있게 될 것이니까요 - 이곳에 숨어..

시읽는기쁨 2018.11.10

동구릉의 늦가을

서울 동쪽 지역에서 오래 살았으므로 동구릉과 친근했다. 고등학생일 때 동구릉으로 소풍을 왔고, 훈장 노릇할 때도 학생들을 인솔해서 여기로 소풍을 자주 왔다. 집 아이들을 데리고 가끔 놀러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들러도 동구릉은 정겹다. 동구릉(東九陵)에는 태조 이성계가 묻힌 건원릉을 비롯해 아홉 능이 있다. 정문을 들어서서 반시계방향으로 돈다면 수릉, 현릉, 목릉, 건원릉, 휘릉, 원릉, 경릉, 혜릉, 숭릉을 지나간다. 어제 비가 내리고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이 열렸다. 수릉(綏陵) -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능. 문조(文祖, 1809~1830)는 23대 순조의 아들로 효명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시작하여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했으나 22세에 요절하였다. 건원릉(健元陵) -..

사진속일상 2018.11.09

논어[315]

선생님 말씀하시다. "애들은 왜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정서를 일깨워 주고, 뜻을 살펴볼 수 있고, 벗들을 모이게 할 수 있고, 하소연할 수도 있고, 가까이는 아비를 섬기고, 멀리는 군왕을 섬기며, 새나 짐승이나 풀이나 나무들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되는데...." 子曰 小子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 陽貨 8 시를 배울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열거하고 있다. 시 공부를 제자들이 소홀했던가 보다. 당장 쓸모 있는 분야가 아닌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자는 군자가 갖추어야 할 소양으로서 시적 감수성을 높게 평가했다. 지금도 옛 시를 인용하는 중국 정치인을 자주 보는데 기저에는 이런 전통이 깔려 있지 않나 싶다. 맹자가 지도자의 덕목으로 내세우는..

삶의나침반 2018.11.08

모든 것은 빛난다

경쾌한 제목과 달리 묵직한 주제를 다루는 철학서다. 저명한 철학교수인 휴버트 드레이퍼스와 숀 도런스 켈이 공저자다. 부제가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 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로, 우리 삶이 다시 빛나기 위해서는 고전 시대의 지혜를 되살려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호메로스 시대의 그리스인들은 행복한 다신주의자들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오늘날에 만연한 허무주의와는 딴판이었다. 우리는 신을 쫓아냈지만 빈 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성스러운 마법의 경험은 사라졌고, 세계의 경이로움으로부터도 멀어졌다. 생의 반짝이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우리는 세계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한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아레테(arete)'는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삶의 '탁월성'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데 '감사..

읽고본느낌 2018.11.07

어떻게든 되겠지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다. 금은보화를 쌓아두고 비단 이불을 덮고 잔들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두막집에서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만 못하다. 건강이 최고라는 것은 건강해야 마음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는 것도 가난의 걱정을 막기 위해서다. 다 마음 편히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이다. 그러나 지나침은 오히려 독이 된다. 건강이나 돈의 노예가 되면 주객이 전도된 격으로 아무 소용 없다. 사람들의 생각을 살펴보면 걱정거리 중 상당 부분이 돈과 관계있음을 알 수 있다. 돈 때문에 형제간에 마찰이 생기고 이웃과 사이가 멀어진다. 소리(小利)를 취하느라 대의(大義)를 버린다. 타인을 어지럽히면 본인도 불편해진다는 사실을 모른다. 마음의 평화를 깨뜨리는 어리석은 행위가 아닐 ..

참살이의꿈 2018.11.06

걱정 마, 안 죽는다 / 유안진

겁먹은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와서 아이 엄마에게 고했다 글쎄 예가 동전을 삼켰대요 얼마짜리를요? 엄마는 태연하게 물었다 친구의 100원짜리를 빼앗아 놀다가, 뺏긴 친구가 뺐으려 하자, 입에 넣고 삼켜 버렸대요 엄마, 나 죽어, 하며 아이는 울어댔지만, 엄마는 더 태연했다 남의 돈 수천씩 먹고도 안 죽는 사람 많더라 설마, 그깟 것 먹고 죽을까잉, 걱정 마 기가 막힌 선생님은 돌아갔고, 아이는 그래도 걱정되어 기도했다 하느님, 앞으로는 절대로 남의 돈 안 먹을 테니 살려주세요 다다음날 아침, 앉은 변기에서 똑 소리가 들려 돌아다보니, 대변에 하얀 동전이 섞여 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엉덩이를 깐 채로 감사기도부터 했다 - 걱정 마, 안 죽는다 / 유안진 이 엄마는 계모인가, 라고 물을 만하다. 아이를 키..

시읽는기쁨 2018.11.05

논어[314]

선생님 말씀하시다. "유야! 너는 여섯 마디 말에 여섯 가지 폐단이 있다는 말을 들었느냐?" 대답하기를 "못 들었습니다." "앉아라. 내가 일러주마. 사람 구실만 내세우지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리석은 데 있다. 지혜만 내세우지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멋대로 하는 데 있다. 미더운 것만 내세우고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잔인하게 되는 데 있다. 곧은 것만 내세우고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꼬이는 데 있다. 용감한 것만 내세우고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어지럽게 되는 데 있다. 꿋꿋한 것만 내세우면서 학문을 좋아하지 않으면, 그 폐단은 마구 덤비는 데 있다." 子曰 由也 女聞六言六蔽矣乎 對曰 未也 居 吾語女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好知不好學 其蔽也蕩 ..

삶의나침반 2018.11.04

호탄리 느티나무

동승자가 와, 하고 환성을 터뜨려 후진하여 곁에 가 본 느티나무다. "참 곱다"는 감탄사가 연이어 나온다. 모양새도 색깔도 무척 예쁘다. 이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은 충북 영동군 양산면 호탄리다. 하늘에서 보면 발갛게 익어가는 홍시처럼 보일 것 같다. 마을길은 나뭇가지다. 바람이 부니 황금색 잎이 와사사 뿌려진다. 자연물의 마지막은 이처럼 아름답다. 사람의 노년과 비교하니 더욱 쓸쓸해진다.

천년의나무 2018.11.04

영국사 은행나무

용문사 은행나무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은행나무다. 충북 영동 천태산 아래 영국사(寧國寺)에 있으며, 천연기념물 223호다. 천 년 나이에 걸맞게 거인의 풍채를 자랑한다. 키는 31m, 가슴 둘레는11m다. 오랫동안 소문만 들었던 이 나무를 마침 노란 단풍이 들었을 때 찾아 보았다. 가을이면 이 나무 아래서 매년 시제(詩祭)를 여는 게 특이하다. '천태산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카페에서 주관한다. 또한 발표된 시를 중심으로 시집을 낸다. 올해 시집 제목은 다. 한 나무가 주는 감동이 이런 시 잔치로 연결된 것이리라. 모범적인 지역 문화 운동이 아닌가 싶다. 다른 나무들로도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세월에 장사 없어 온몸이 주글주글 곱던 이마도 주름 골이 깊어지다 골다공증으로 지팡이 여러 개 ..

천년의나무 2018.11.03

성지(11) - 진산성지

17. 진산성지 한국 천주교사에서 진산사건(珍山事件)은 유명하다. 1791년 당시 전라도 진산의 양반이던 윤지충 집안에서 전통적인 조상 제사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천주교인이던 윤지충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신주를 모시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으면서 천주교 의식에 따라 모친상을 치렀다. 이런 행위는 패륜에 다름 아니었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윤지충은 동조한 권상연과 함께 문초를 받았고, 사교를 신봉하고 사회 질서을 어지럽힌 죄로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 당했다. 그들이 나고 자란 진산군도 연좌의 벌을 받아 현으로 강등 되었다. 진산사건은 신해박해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다. 그분들의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 진산성지가 있다.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사진속일상 2018.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