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나침반

논어[315]

샌. 2018. 11. 8. 11:52

선생님 말씀하시다. "애들은 왜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정서를 일깨워 주고, 뜻을 살펴볼 수 있고, 벗들을 모이게 할 수 있고, 하소연할 수도 있고, 가까이는 아비를 섬기고, 멀리는 군왕을 섬기며, 새나 짐승이나 풀이나 나무들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되는데...."

 

子曰 小子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 陽貨 8

 

 

시를 배울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열거하고 있다. 시 공부를 제자들이 소홀했던가 보다. 당장 쓸모 있는 분야가 아닌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자는 군자가 갖추어야 할 소양으로서 시적 감수성을 높게 평가했다. 지금도 옛 시를 인용하는 중국 정치인을 자주 보는데 기저에는 이런 전통이 깔려 있지 않나 싶다.

 

맹자가 지도자의 덕목으로 내세우는 측은지심도 이성이나 지식보다는 인간 정서와 관련되어 있다. 공자가 시(詩)와 악(樂) 교육을 강조한 이유일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식 위주의 입시 제도는 좌뇌 편중의 일그러진 인간을 만든다. 교육을 포함한 사회 시스템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왜 시를 배우지 않느냐?" 공자의 이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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