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말 많은 수능

샌. 2018. 11. 21. 11:05

올 수능도 뒷말이 많다. 고작 몇백 명 대상의 학교 시험에서도 이러쿵저러쿵 시빗거리가 생기는데 한꺼번에 60만 명이 시험을 치르는 수능은 오죽하겠는가. 쉬우면 쉬운 대로,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뒷말이 안 생긴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가장 논란이 된 문제는 국어 영역 31번이다. 한 페이지에 걸쳐 긴 지문이 나오고 그에 딸린 문제가 여섯이다. 그중에 31번이 너무 어렵다고 해서 아우성이다. 도대체 어떤 문제인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우선 지문이 이렇게 길다.

 

 

근세에 등장한 동서양 우주론에 대한 설명이다. 배경 지식이 없는 사람은 상당히 난해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중에 31번이 나온다.

 

 

이 문제를 보니 만유인력 개념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즉, 만유인력은 두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거리에 반비례한다. '질점'이니 '부피 요소'니 하는 용어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두 물체 사이의 만유인력은 서로 같다는 사실만 알면 된다. 이 내용이 '지문 A'에 나와 있다. 그러면 <보기>를 읽어보지 않아도 가 틀렸음을 알 수 있다. 지구와 태양 질량의 차이만큼 만유인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초 지식이 없는 문과생이 답을 찾자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문과생이 전후좌우를 따져 논리를 찾고 1분 안에 푼다는 건 무리다. 최고 난이도 문제로 느껴질 만하다. 이런 문제는 건너뛰고 넘어가야지 여기에 붙잡혀 있다가는 시험을 망친다.

 

어느 해인가에 수능 검토위원으로 들어간 적이 있다. 문제 내는 어려움을 그때 몸소 체험했다. 토씨 하나 가지고도 오래 논쟁을 한다. 모든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문제를 내기는 정말 어렵다. 수능은 대학 수학 능력을 체크하기보다 현실적으로 줄 세우기가 일차 목적이다. 변별력을 가지기 위해서 킬링 문제는 필요하다. 그렇지만 국어 31번은 이과생에 너무 유리하다. 물리 문항에 넣어도 될 문제다. 국어에서 물리 지식을 테스트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대학에 들어갈 때는 예비고사를 보고 대학별 본고사를 치렀다. 그때 제도가 어쩌면 더 나을지 모르겠다. 요사이는 대학에 너무 많이 들어간다. 굉장한 국가의 자원 낭비며 개인의 스트레스다. 독일 연수 갔을 때 접해 본 독일의 교육제도는 부러웠다. 우리처럼 일률적으로 대학 진학이 목표가 아니라 학생 적성에 맞는 교육을 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김나지움이나 실업학교로 갈 길이 분리된다. 우리 같은 전 국가적인 입시 전쟁이 없다. 독일은 굳이 대학에 안 가도 얼마든지 멋있게 살아갈 여건이 되어 있는 사회다. 대학 안 나왔다고 차별하지 않는다.

 

여건이 안 되는데 선진국 제도를 따를 수는 없다. 그랬다가는 더 큰 부작용만 따른다. 국민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교육 제도도 개선될 것이다. 일류대학에 대한 열망이 식지 않는 한 어떤 논의도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 힘들 것 같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 장의 사진(25)  (0) 2018.12.06
달 착륙 조작이 가능한가  (0) 2018.11.29
2018 그리니치 천체사진  (0) 2018.10.29
별침을 권함  (0) 2018.10.27
풍선과 소녀  (0) 2018.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