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풍선과 소녀

샌. 2018. 10. 12. 10:13

그림에 문외한이니 내막을 모르지만 지난주에 일어난 일을 보면 예술 세계란 게 참 희한하다. '풍선과 소녀'라는 뱅크시의 그림이 소더비에서 경매에 부쳐졌다. 예상보다 높은 15억 원에 낙찰되었는데, 바로 뒤에 해프닝이 일어났다. 그림이 액자 밑으로 빠져나가며 갈가리 찢어진 것이다. 뱅크시가 액자 뒤에 기계 장치를 해 두고 경매가 끝나자마자 그림이 파손되도록 원격조정했다는 것이 나중에 알려졌다. 뱅크시가 무엇을 노렸든지 간에 이런 것도 예술 행위의 일종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우선 나는 그림값이 왜 그렇게 비싸야 하는지 이해 불가다. 미술 전시회장이나 경매장은 예술을 핑계로 돈 많은 사람이 투기질하는 무대인 것 같다. 그림이 예술 자체의 가치보다는 재테크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유명 화가의 작품이라면 뭔지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제대로 알고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만약 작가를 속이고 전시한다면 작품의 가치를 구별해 낼 사람이 있을까. 초등학생의 그림이라도 명성 높은 큐레이터의 손을 거치면 명작으로 둔갑할 수도 있다.

 

이번에 화제가 된 뱅크시가 실제로 그런 시도를 했다. 전시회장 사이에 엉뚱한 작품을 걸어 두었는데도 알아채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갔다고 한다. 뱅크시는 이런 풍조에 딴지를 거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번 행위도 별 가치도 없는 것에 많은 돈을 걸며 사고파는 경매 시스템에 대한 경종이자 조롱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그렇다면 뱅크시는 멋진 예술가다.

 

 

이 그림이 이번에 화제가 된 '풍선과 소녀'다. 뱅크스의 이름값인지 뭔지 모르지만 여기에 15억 원을 거는 사람이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는 희귀종 튤립에 대한 투기가 일어나서 튤립 구근 한 개가 소 100마리 값으로 거래되었다고 한다. 지금 보면 어리석은 짓거리였는데, 현대의 고가 미술품 경매도 그와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아파트 투기보다는 낫다고 할까.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니까. 예술은 아름답지만 예술계는 구린내가 많이 난다. 미술계만 아니고 어디든 마찬가지다. 학연과 지연으로 얽힌 사진계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자주 듣고 있다. 좀 심하게 말하면 예술이란 우매한 대중을 대상으로 사기를 치는 행위다.

 

뱅크시는 예술품이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아무나 보고 느끼고 공유할 수 있는 공공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길거리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유명해지니까 벽에 그린 그림들이 수억 원에 판매되었다. 이 '풍선과 소녀'도 길거리 벽에 그린 그림이었다. 그림이 경매에 나오니까 고가에 판매될 줄 미리 알고 액자 뒤에 설치한 파쇄 장치를 작동한 것이다. 구린내 나는 미술계를 조롱하고 돈 많은 사람을 경각시키려는 의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소더비에서는 미리 알고 있었다는 소문도 있으니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는지 모른다. 찢어진 '풍선과 소녀'가 오히려 15억 이상이 갈 수 있다는 예상도 있으니 말이다. 이래저래 이번 소동을 보면서 떨떠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좋은 그림이 비싼 그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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