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 29

걸어도 걸어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영화를 좋아한다. 우리나라에 소개된 고레에다 감독 작품은 거의 다 보았다. '아무도 모른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걸어도 걸어도' '엔딩 노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리어리' '환상의 빛' '태풍이 지나가고' '세 번째 살인' 등이다. 최근에 개봉한 영화 '어느 가족'은 유감스럽게도 비켜 지나갔다. 고레에다 감독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일상을 정감있게 담아낸다. 화려한 기교나 볼거리는 없어도 영화가 보여주는 풍경이나 인물의 대사가 가슴을 울린다. 사소한 데서 삶의 핵심을 잡아내는 능력이 뛰어난 감독이다. 평범 속의 비범이랄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에서는 따스함이 느껴지는데, 서정성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

읽고본느낌 2018.10.30

2018 그리니치 천체사진

매년 천체사진을 공모하는 영국의 그리니치 천문대에서 올해의 수상작을 발표했다. 11개 분야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중에서 '사람과 우주(People & Space)' 부문 수상작만 소개한다. 1등, Transport the Soul Nikon D810, 14mm, ISO 2500, 20 sec 2등, Living Space Sony ILCE-7S, 28mm, ISO 6400, 15 sec 3등, Me versus the Galaxy Nikon D810, 20mm, ISO 5000, 10 sec 입선, Catching the Moment of Owe Sony ILCE-7S, 24mm, ISO 6400, 1/160 sec 입선, Expedition to Infinity Canon EOS 6D, 24mm, ISO..

길위의단상 2018.10.29

꽃을 보는 법 / 복효근

꽃이 지고 나면 그뿐인 시절이 있었다 꽃이 시들면 바로 쓰레기통에 버리던 시절 나는 그렇게 무례했다 모란이 지고 나서 꽃 진 자리를 보다가 알았다 꽃잎이 떨어진 자리에 다섯 개의 씨앗이 솟아오르더니 왕관 모양이 되었다 화중왕花中王이라는 말은 꽃잎을 두고 한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란꽃은 그렇게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었다 백합이 지고 나서 보았다 나팔 모양의 꽃잎이 지고 수술도 말라 떨어지고 나서 암술 하나가 길게 뻗어 달려있다 꽃가루가 씨방에 도달할 때까지 암술 혼자서 긴긴 날을 매달려 꽃의 생을 살고 있었다 꽃은 그러니까 진 다음까지 꽃이다 꽃은 모양과 빛깔과 향기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랑이 그러하지 않다면 어찌 사람과 사랑을 꽃이라 하랴 생도 사랑도 지고 난 다음까지가 꽃이다 - 꽃을 보는..

시읽는기쁨 2018.10.28

별침을 권함

자식과 같이 살았을 때는 방의 여유가 없어 부부는 한방을 써야 했다. 남편이 코를 골아도, 아내가 잠꼬대해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젊었을 때는 쉽게 잠이 드니 별문제가 안 되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잠귀가 밝아지고 예민해진다. 마침 그때쯤이면 자식이 출가하게 되고 빈방이 생기니 부부는 서로 편하게 딴 방을 쓰는 경우가 흔하다. 아마 많은 가정이 그럴 것이다. 부부는 마땅히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고 초지일관 고집을 부리는 친구가 있지만 별 호응을 얻지는 못한다. 우리 부부도 각방을 쓰기 시작한 게 3년 정도 되었다. 잠을 잘 못 드는 아내는 전에도 거실이나 빈방에서 혼자 자는 경우가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그 빈도가 점점 잦아졌다. 자식이 결혼하고 자연스레 방이 비면서 방 하나는 아내의 침실이 되었..

길위의단상 2018.10.27

논어[313]

필힐이 부른즉, 선생님이 가고 싶어 하였다. 자로가 말했다. "언젠가 제가 선생님께서 '자신이 저질러서, 좋잖은 짓을 한 자의 틈에 참된 인간은 끼지 않는다'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는데, 필힐이 중모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도 선생님은 가시려고 하니 어찌된 일인가요?" 선생님 말씀하시다. "그렇다. 그렇게 말한 일이 있다. '단단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갈아도 닳지 않으니.... '희다'고 말하지 않는가! 검게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으니.... 나는 어찌 조롱박이던가? 대룽대룽 매달려서 먹지도 못하는 물건인가?" 佛힐召 子欲往 子路曰 昔者 由也 聞諸夫子曰 親於其身爲不善者 君子不入也 佛힐 以中牟畔 子之往也 如之何 子曰 然 有是言也 不曰堅乎 磨而不린不曰白乎 涅而不緇 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 陽貨 6 앞에 ..

삶의나침반 2018.10.25

김수영의 연인

올해가 김수영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50년이 된다. 이 책은 시인의 부인인 김현경 여사가 쓴 에세이로 김수영 시인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시인을 처음 만나 결혼하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이별하기까지 두 분의 삶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여사는 1927년생으로 용인에서 시인의 생전 집필실을 재현해두고 홀로 살고 있다. 이라는 책 제목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두 사람은 부부라기보다는 문학 동지이자 연인으로 살았다. 둘은 보통의 부부관계 이상의 공통된 이상을 갖고 있었다. 시인이 괴팍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여사도 여느 여자와는 다르다. 시인이 '아방가드르'한 여자라고 불렀다는데, 여사도 시인 못지않게 파격적인 면모를 보인다. 여사는 시인을 진명여고 2학년 때 만났다고 한다. 연애 ..

읽고본느낌 2018.10.23

소금산의 가을

출렁다리로 뜨고 있는 소금산을 찾았다. 간현관광지에 주차를 하고 들어갔는데 깔끔하게 단장된 주변 시설이 인상적이었다. 평일 아침 10시경인데도 주차장은 거의 차들로 찼고, 구경 온 사람들 행렬은 연이었다. 출렁다리 하나로 면모가 일신되었다. 처제 부부가 동행했다. 우리는 등산을 겸했음으로 출렁다리 입구를 지나 삼산천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삼산다리를 지나면 가파른 절벽을 철계단을 타고 올라야 한다. 마지막 부분은 경사가 거의 90도에 가깝다. 내려갈 때는 아찔할 것 같다. 이래서 소금산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게 좋다. 소금산(小金山)은 해발 343m로 나즈막하다. 가파른 철계단만 견뎌내면 능선길은 부드럽고 쉽다. 정상에서 20분 정도 걸어내려가면 출렁다리를 만난다. 출렁다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간현관..

사진속일상 2018.10.22

죄와 벌 / 김수영

남에게 희생을 당할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놈이 울었고 비오는 거리에는 사십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 죄와 벌 / 김수영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김수영 시인밖에 없는 것 같다. 자신의 치부를 이 정도로 적나라하게 까발려도 되는지 고개가 저어진다. 우산으로 여편네를 패고는 우산 두고 온 게 아깝다고 말한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인간쓰레기라고 부를 만하다. '성(性)'이라는 시는 더 노골적이다. 이런 시가 발표되면 부인의 심정은 어떨까. 당시 ..

시읽는기쁨 2018.10.21

논어[312]

자장이 사람 구실에 대하여 물은 즉, 선생님 말씀하시다. "세상에서 다섯 가지 일만 잘하면 사람 구실이 되지." 자세한 것을 물은즉 '공손하고, 너그럽고, 미덥고, 민첩하고, 인정이 있어야 한다. 공손하면 업신여기지 않고, 너그러우면 많은 사람이 따르고, 미더우면 일거리를 맡기고, 민첩하면 공을 세우고, 인정이 있으면 사람을 잘 부릴 수가 있다." 子張問仁於孔子 孔子曰 能行五者於天下 爲仁矣 請問之 曰 恭 寬 信 敏 惠 恭則不侮 寬則得衆 信則人任焉 敏則有功 惠則足以使人 - 陽貨 5 뒤에 나올 요왈(堯曰) 편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인(仁)의 정치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공손함[恭], 너그러움[寬], 믿음직함[信], 부지런함[敏], 베품[惠]의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이는 정치만이 아니라 완성된 인간의 ..

삶의나침반 2018.10.20

사랑고파병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라고 시작하는 노래다. 가끔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향해 부르는 경우를 본다. 어느 경우든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불편해진다. 어른이 된다는 건 사랑을 받기보다는 사랑을 주는 능력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건 유년기에 한정된 얘기다. 인간의 일생에서 사랑을 받기만 하는 시기는 유년기다. 이때는 온전히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사랑 받는 타령만 한다면 정신적으로는 아직 유아기에 머물고 있다는 증거다.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이 안 된 채로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사람이 ..

참살이의꿈 2018.10.19

나의 이력서

26년 전의 소동이 생각난다. 마광수 작가가 쓴 이 소설이 외설이라는 이유로 작가는 긴급 체포를 당하고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결국 유죄판결을 받았다. 마 교수는 연세대에서 해임되고 연금을 못 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 여파가 결국은 안타까운 자살로까지 이어졌다고 본다. 왕따가 되어 명예를 잃고 생계마저 어려운 상황에서 버티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 는 마광수 작가의 삶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기존에 발표한 글에서 과거를 돌아본 내용을 추려 펴냈다. 2013년에 나왔으니 근작에 가까운 편이다. 마광수는 대표적인 천재형 작가다. 시대를 앞서간 반골 기질을 타고났으니 시대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연애나 서클 활동 등의 화려한 대학 생활을 보내고도 성적은 1등으로 졸..

읽고본느낌 2018.10.18

경안천 고마리

고마리 피는 곳이 어디 경안천만이겠는가. 가을이면 우리나라의 물이 있는 곳 어디서나 지천으로 피어난다. 얼마나 많이 자라기에 '고만' 피라고 '고마리'라 불렀을까. 고마리 어원이 '고마운 이'라는 설도 있다. 하수구 물을 정화하는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심지도 않았는데 제가 알아서 자라나 물을 맑게 해 주니 더 이상 고마울 수가 없다. 흔하다고 소홀히 여기지만 고마리 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석처럼 예쁘다. 연꽃을 찬탄하지만 고마리 꽃도 그에 못지않다. 물의 청탁을 가리지 않고 맑게 피어나는 네 모습이 아름답다.

꽃들의향기 2018.10.17

수렴동계곡 단풍

11월 15일 현재 내설악 단풍은 수렴동대피소와 영시암까지 내려왔다. 백담사 부근은 이번 주말이 되어야 만산홍엽이 될 것 같다. 단풍 구경하러 아내와 수렴동계곡에 다녀왔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주로 걸어 왕복했는데 지금은 시멘트로 포장한 길에다 버스마저 자주 다녀 걷기에는 불편하다. 수월하게 오가는 대신 아까운 계곡 하나를 잃은 느낌이다. 백담사 앞 계곡의 돌탑은 자연에 펼쳐진 만다라 그림 같다. 본격적인 산길 걷기다. 설악산 산길 중에서 이곳 수렴동계곡 길이 걷기에 제일 평탄하지 않나 싶다. 수렴동대피소까지 두 시간여 동안 거의 이런 길이 계속된다. 또한 북적대지 않아서 좋다. 수렴동계곡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작년에 간 천불동계곡과 비교하면 빼어난..

사진속일상 2018.10.16

효도에 / 마광수

어머니, 전 효도라는 말이 싫어요. 제가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나요? 어머니가 저를 낳으시고 싶어서 낳으셨나요. '낳아주신 은혜' '길러주신 은혜' 이런 이야기를 전 듣고 싶지 않아요. 어머니와 전 어쩌다가 만나게 된 거지요. 그저 무슨 인연으로, 이상한 관계에서 우린 함께 살게 된 거지요. 이건 제가 어머니를 싫어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제 생을 저주하여 당신에게 핑계 대겠다는 말이 아니에요. 전 재미있게도, 또 슬프게도 살 수 있어요. 다만 제 스스로의 운명으로 하여, 제 목숨 때문으로 하여 전 죽을 수도 살 수도 있어요. 전 당신에게 빚은 없어요 은혜도 없어요. 우리는 서로가 어쩌다 엃혀 들어간 사이일 뿐, 한쪽이 한쪽을 얽은 건 아니니까요. 아, 어머니,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난 널 기르..

시읽는기쁨 2018.10.14

논어[311]

공산불요가 비 지방에서 반란을 일으킨 후 선생님을 부른즉, 선생님이 가고 싶어했다. 자로가 언짢게 여겨 말하기를 "그만 두셔야지요. 하필 공산 씨에게로 가실 게야 있습니까?" 선생님 말씀하시다. "나를 부르는 것이 어찌 공연한 일일까! 만일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한 번 동쪽 주나라처럼 만들어 볼까!" 公山弗擾 以費畔 召 子欲往 子路 不悅 曰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子曰 夫召我者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 陽貨 4 자로의 반응으로 봐서 반란을 일으킨 공산불요는 평판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공자는 공산과 손을 잡고 싶어 했다. 공자는 그만큼 절박했는지 모른다. 정치를 할 수 있다면 주나라가 동쪽에 있던 시절을 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공자에게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삶의나침반 2018.10.13

풍선과 소녀

그림에 문외한이니 내막을 모르지만 지난주에 일어난 일을 보면 예술 세계란 게 참 희한하다. '풍선과 소녀'라는 뱅크시의 그림이 소더비에서 경매에 부쳐졌다. 예상보다 높은 15억 원에 낙찰되었는데, 바로 뒤에 해프닝이 일어났다. 그림이 액자 밑으로 빠져나가며 갈가리 찢어진 것이다. 뱅크시가 액자 뒤에 기계 장치를 해 두고 경매가 끝나자마자 그림이 파손되도록 원격조정했다는 것이 나중에 알려졌다. 뱅크시가 무엇을 노렸든지 간에 이런 것도 예술 행위의 일종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우선 나는 그림값이 왜 그렇게 비싸야 하는지 이해 불가다. 미술 전시회장이나 경매장은 예술을 핑계로 돈 많은 사람이 투기질하는 무대인 것 같다. 그림이 예술 자체의 가치보다는 재테크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지적 허영심을 채워주는 도구..

길위의단상 2018.10.12

개쑥부쟁이

가을이면 남한산성 성곽을 따라 쑥부쟁이가 환하게 피어난다. 쑥부쟁이는 이름처럼 정겹고 친근한 우리 꽃이다. 구절초가 귀족의 우아한 분위기라면, 쑥부쟁이는 서민의 소탈함을 보여준다. 남한산성에서 가을에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꽃은 쑥부쟁이 중에서도 개쑥부쟁이다. 미국쑥부쟁이도 자주 보인다. 쑥부쟁이와 개쑥부쟁이는 꽃 모양으로는 쉽게 구별이 안 된다. 그냥 산에서 보는 대부분의 쑥부쟁이는 개쑥부쟁이로 보면 된다. 쑥부쟁이는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란다. 성곽 아래 피어난 쑥부쟁이를 보면 가을이 깊어간다는 걸 재삼 확인한다.

꽃들의향기 2018.10.11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부잣집 딸로 태어나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화가가 되어 전시회를 열고, 외교관 남편을 만나 세계 일주를 다니며 호화롭게 살다가, 파리에서 만난 남자와 불륜에 빠져 이혼당하고 몰락한 여자, 겉으로 보는 나혜석의 삶이다. 나혜석의 삶은 세인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만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그러나 에서는 나혜석의 새로운 면을 발견한다. 그녀는 3.1 독립운동 시위 관련자로 수감되기도 했고, 음양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며, 조선 여성의 의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야학을 설립했고, 가부장 문화에 도전한 용기 있는 여성이었다. 페미니즘 운동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에는 소설을 비롯한 나혜석의 작품이 실려 있고, 간단한 해설이 붙어 있다. 나혜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책이다. "정..

읽고본느낌 2018.10.10

누비길: 태재~오리역

용두회 누비길 걷기 여섯 번째로 태재에서 오리역까지 걸었다. 누비길 4구간에 해당하는 코스다. 태재고개에서 형제봉, 불곡산, 부천당고개, 위남에고개, 구미동을 경유하는 길이다. 거리는 8km이고, 네 시간 정도 예상했는데 길이 평탄해서 세 시간이 걸렸다. 누비길 전 구간 중 가장 걷기 편한 길인 것 같다. 용두회원 다섯 명이 함께 했다. 불곡산 아래 사는 친구가 있어 안내를 맡았다. 산불 감시 초소 전망대에서는 분당이 내려다보였는데, 깔끔한 전원도시라는 느낌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스갯소리로 천당 아래 분당이라고 한다. 잘 다듬어진 환경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때깔부터 다르다. 잘난 동네에 들어가면 왠지 주눅이 들고 루저가 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일종의 자격지심인지 모른다. 하산해서는 오리역 주변에서 통상..

사진속일상 2018.10.09

산욕 / 나혜석

아프데 아파 참 아파요 진정 과연 아픕데 푹푹 쑤신다 할까 씨리씨리다 할까 딱딱 걸린다 할까 쿡쿡 찌른다 할까 따끔따끔 꼬집는다 할까 찌르르 저리다 할까 깜짝깜짝 따갑다 할까 이렇게나 아프다나 할까 아니다 이도 아니다 박박 뼈를 긁는 듯 쫙쫙 살을 찢는 듯 빠짝빠짝 힘줄을 옥죄는 듯 쪽쪽 핏줄을 뽑아내는 듯 살금살금 살점을 저미는 듯 오장이 뒤집혀 쏟아지는 듯 도끼로 머리를 바수는 듯 이렇게 아프다나 할까 아니다 이도 또한 아니다 조그맣고 샛노란 하늘은 흔들리고 높은 하늘 낮아지며 낮은 땅 높아진다 벽도 없이 문도 없이 퉁하여 광야 되고 그 안에 있던 물건 쌩쌩 돌아가는 어쩌면 있는 듯 어쩌면 없는 듯 어느덧 맴돌다가 갖은 빛 찬란하게 그리도 곱던 색에 매몰히 씌워 주는 검은 장막 가리우니 이내 작은 몸..

시읽는기쁨 2018.10.08

논어[310]

선생님이 무성 지방에 가서 풍류 소리를 들으셨다. 선생님은 방긋이 웃으면서 "닭 잡는 데 소 칼을 내두르다니!" 자유가 대답하기를 "전에 제가 선생님께 듣자옵기를 '참된 인물이 도리를 배우면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찮은 사람이 도리를 배우면 부리기 쉽다'고 하셨습니다." 선생님 말씀하시다. "얘들아! 언의 말이 옳다. 앞서는 거저 농담으로 한 말이다." 子之武城 聞弦歌之聲 夫子莞爾而笑曰 割鷄焉用牛刀 子游 對曰 昔者偃也 聞諸夫子曰 君子學道則愛人 小人學道則易使也 子曰 二三者 偃之言是也 前言戱之耳 - 陽貨 3 상황을 정리하면 이럴 것이다. 공자 제자인 자유가 무성 지방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스승이 방문했다. 제자가 잘 다스리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칭찬해주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무성의 풍류 소리를 듣고는..

삶의나침반 2018.10.07

돈이 뭐길래

유럽의 중세는 종교에 미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유럽 여행을 할 때 미술관에 들러보면 대부분이 기독교와 관계된 그림이다. 중세 시대 작품은 백 퍼센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는 가치관이나 행동 양식이 오로지 종교의 지배를 받았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의 뜻을 따르면서 옳게 살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지배층은 이런 민중의 무지를 이용하면서 기득권을 마음껏 누렸는지 모른다. 얼마나 비인간적인 환경에 살고 있는지는 동시대에 사는 사람은 모른다. 숲을 벗어나야 전체적인 윤곽을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 돈이 최고인 세상이다. 중세 사람들이 종교와 믿음을 위해 살았던 것처럼, 우리는 돈을 사람보다 더 중요시하며 그걸 당연시한다. 한 마디로 돈에 미쳐..

참살이의꿈 2018.10.06

바그다드 카페

황량한 모하비 사막 가운데 문제투성이인 '바그다드 카페'가 있다. 여주인인 브렌다의 삶은 고단하고 거칠다. 자식은 천방지축이고, 게으름뱅이 남편과는 매일 싸우는 게 일이다. 총으로 협박당한 남편은 집을 나갔다. 남편과 여행을 하던 독일 여성 야스민은 말다툼 후 트렁크 하나만 들고 길에 남았다. 여관을 겸하고 있는 바그다드 카페를 찾으며 브렌다와 만난다. 둘이 처음 만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이때부터 변화가 일어난다. 야스민은 카페를 청소하며 분위기를 바꿔 나간다. 물과 기름 같던 사람들 사이에 웃음이 되살아난다.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야스민의 따스한 인간애가 카페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변화시킨다. 마치 떠나간 남편에게 화풀이하듯이(?). 그런 야스민이 남편과는 왜 소통이 안 되었는지 살짝 궁금해진다. ..

읽고본느낌 2018.10.05

물의정원 코스모스

꽃밭에서는 누구나 선남선녀가 된다. 꽃을 보며 화를 내는 사람은 이때껏 보지 못했다. 꽃밭에서는 꽃만큼 사람도 예쁘다. 코스모스를 보러 물의정원에 찾아가다. 이곳에 심은 종류는 주황색의 황화코스모스다. 파란 가을 하늘과 어울린 색깔이 강렬하다. 이번에는 주로 50mm로 찍어보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단렌즈를 이리저리 시험해 보는 중이다. 어디선가 '아름다운 강산'이 울려퍼지는 것 같다.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 실바람도 불어와 부풀은 내 마음 / 나뭇잎 푸르게 강물도 푸르게 / 아름다운 이곳에 내가 있고 네가 있네." 노래 가사처럼 아름답고 고마운 우리 강산이다. 감사하고 행복하다.

꽃들의향기 2018.10.04

탄천 코스모스

힘들게 탄천을 찾아갔더니 올해는 코스모스 꽃밭을 안 만들었단다. 다행히 귀퉁이는 조금 남아 있어 아쉬운 대로 허기를 달래다. 사진은 발로만 찍는 게 아니라, 요사이는 정보력으로도 찍는다. 20년 전 필름 카메라 시절에 쓰던 105mm 마크로를 꺼내서 테스트해 보다. 끼익, 하는 소리가 크게 나지만 오토 포커스도 그런대로 작동된다. 사진도 신형 마크로와 별 차이가 없다. 렌즈 기술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결국은 카메라를 만지는 사람의 마음으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꽃들의향기 2018.10.03

인구로 본 남은 수명

어제는 '노인의 날'이었다. 나라에서는 100세가 된 노인에게 청려장을 증정하며 기념식을 열었다. 올해 100세가 된 노인이 1,343명(남 235, 여 1,108)이다. 고령사회가 되었음을 실감한다. 100세 이상은 18,505명이나 된다. 통계청에 들어가서 우리나라 연령별 인구 분포를 찾아보았다. 2018년 8월 기준인 최신 자료다. 5세 단위의 노인 수는 이렇다. 65세 -- 525,134명 70세 -- 442,372명 75세 -- 363,389명 80세 -- 246,302명 85세 -- 129,958명 90세 -- 52,061명 95세 -- 16,933명 100세 -- 1,343명 이것으로 남은 수명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오차가 있겠지만 표본이 많으니 무시해도 괜찮을 듯하다. 현재..

길위의단상 2018.10.03

신현회와 남한산성에

신현회원 넷이 남한산성에 올랐다. 12시에 마천역에서 만나 남한천약수터를 지나는 길을 걸었다. 이 길은 거의 20년 만에 찾은 터라 감회가 남달랐다. 초로의 남자가 모이니 온통 건강 이야기다. 누구를 아느냐, 누구는 아프고 누구는 죽었다, 잠깐 슬픔에 젖지만 누구에게나 미구에 닥칠 일이 아닌가. 아직은 휴우, 하고 안도할 뿐이다. 지나가던 젊은이가 남한산성의 높이를 묻는데 대답을 못해 주었다. 미안하면서 고맙기도 했다. 스마트폰 클릭 한 번이면 확인할 수 있을 터인데 묻기도 하는구나. 뒤에 가만히 찾아 보았다. 수어장대가 있는 청량산의 높이는 482m다. 남한산성에서 제일 높은 남한산은 522m다. 맑은 가을날에 감탄하며 한참동안 지형 찾기 놀이를 했다. 꽃에서도 완연히 가을 분위기가 났다. 여름 꽃에 ..

사진속일상 2018.10.02

죽고 난 뒤의 팬티 / 오규원

가벼운 교통 사고를 세 번 겪고 난 뒤 나는 겁쟁이가 되었습니다. 시속 80킬로미터만 가까워져도 앞 좌석의 등받이를 움켜쥐고 언제 팬티를 갈아 입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재빨리 눈동자를 굴립니다. 산 자도 아닌 죽은 자의 죽고 난 뒤의 부끄러움, 죽고 난 뒤에 팬티가 깨끗한지 아닌지에 왜 신경이 쓰이는지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신경이 쓰이는지 정말 우습기만 합니다. 세상이 우스운 일로 가득하니 그것이라고 아니 우스울 이유가 없기는 하지만. - 죽고 난 뒤의 팬티 / 오규원 아내는 외출할 때 부엌을 깔끔하게 정리한다. 만약 밖에서 죽었을 때 누군가 집에 들어와 보고 지저분하게 살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단다. 나는 허허, 웃을 수밖에 없다. 죽고 난 뒤에 팬티 걱정하는 사람보다는 덜 하다고 할까. 죽으면 아..

시읽는기쁨 2018.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