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노래가 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라고 시작하는 노래다. 가끔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향해 부르는 경우를 본다. 어느 경우든 이 노래를 들을 때면 불편해진다. 어른이 된다는 건 사랑을 받기보다는 사랑을 주는 능력에 좌우된다고 생각한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건 유년기에 한정된 얘기다.
인간의 일생에서 사랑을 받기만 하는 시기는 유년기다. 이때는 온전히 부모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사랑 받는 타령만 한다면 정신적으로는 아직 유아기에 머물고 있다는 증거다. 부모로부터 정신적 독립이 안 된 채로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면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
이를 '사랑고파병'이라고 불러본다. 유아기에 사랑받으려는 욕구가 채워지지 못하면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과 관심에 헐떡거리게 된다. 남의 인정에 목말라하면서 새로운 사랑에 대한 갈구나 재물에 대한 애착으로 나타난다. 성공에 대한 집착도 사랑고파병의 한 형태일 수 있다. 유아기 때의 사랑 결핍은 한 인간의 인격을 손상시킨다.
동네 친구 중 한 사람은 어릴 때 떼쓰기로 유명했다. 형제 중에 가운데여서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부모의 관심은 일반적으로 첫째와 막내에게 집중되기 때문이다. 그가 떼쓸 수밖에 없는 것은 어머니의 관심을 끌어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애정 결핍은 성인이 된 후에도 그의 행동 양식을 지배하고 있다. 지금도 부모 형제 관계가 자주 삐걱거리는 걸 본다. 한쪽은 과다 집착으로, 다른 쪽에 대해서는 공격적으로 나타난다.
신심 좋은 종교인 중에도 사랑고파병 환자가 있다. 신을 향한 지극한 사랑을 뒤집어 보면 유년 시절 사랑의 결핍에서 오는 보상 심리가 원인일 수 있다. 종교는 제도적으로 인증된 사랑고파병의 치유 수단이 된다. 그런 점에서 종교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의 안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랑고파병에 걸린 사람의 믿음은 맹신으로 흐리기 쉽다.
유아기에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인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요소인지 모른다. 애정의 결핍은 갈증을 낳는다. 이 갈증으로 죽을 때까지 시달린다. 반면에 요사이는 과잉 애정으로 인한 부작용도 나타난다. 한두 자녀만 두다 보니 지나친 보살핌과 간섭으로 자녀의 자주적인 인격 형성을 방해한다. 저 하나밖에 모르는 이런 류는 '천상천하유아독존병'이라 불러도 되겠다.
인간 심리는 복잡하면서 미묘하다. 여러 요인이 뒤섞여 인간의 마음을 형성한다. 세상에 태어나 자라면서 마음에는 수많은 생채기가 만들어진다. 대부분은 생채기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생채기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채기가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어떤 사람은 생채기가 삶의 자극이며 동력이 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은 부분적으로는 옳다. 유년기 때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늘 갈증에 시달리고 껄떡댄다. 인생의 갈증은 인생 자체의 근원적인 허무성에도 기인하지만 사랑고파병도 한 원인이다. 내 안에서도 자주 사랑고파병의 흔적을 본다. 과한 인정 욕구가 발동될 때 알아차린다. 그럴 때는 내가 나를 따스히 보듬으려 노력한다.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의 행동 바탕을 이해한다면 비난하기 전에 먼저 연민으로 대할 일이다. 알고 보면 우리는 모두 가련한 존재들이다. 너나없이 덜 아문 생채기를 쓰다듬으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