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 35

바느질 / 박경리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 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 바느질 / 박경리 바느질을 마지막으로 한 게 군대에서였던 것 같다. 그때는 군대 생활을 하자면 실과 바늘이 필수였다. 그전에는 외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바늘귀에 실을 꿰 드리는 게 내 담당이었다. 지금은 아내한테서도 바느질하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한다. 꿰매야 할 정도로 해진 옷을 입지도 않거니와, 어지간하면 세탁소에 맡기기 때문이다. 어쩌다 돋보기를 쓰고 바느질하는 아내 모..

시읽는기쁨 2020.05.05

프로의 솜씨

어머니가 농사일을 놓으신지 서너 해가 되었다. 지금은 집 앞 텃밭만 가꾸신다. 한창 농사를 지을 때 어머니 별명이 '농사 9단'이었다. 동네 사람들조차 어머니한테 와서 조언을 구했다. 어머니가 작물을 키우면 다른 집에 비해 소출이 월등했다. 다른 사람이 말하길 "똑같이 농사짓는데 저 집은 왜 다를까?"라는데, 내가 볼 때 특별한 비결이 있기보다는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 고향 집에 갔더니 텃밭에 고추를 심어 놓으셨다. 일렬로 늘어선 고추가 해병대 줄보다 더 정확히 맞아 있었다. 줄을 긋고 심은 것도 아니고 대충 눈대중으로 했다는 게 이 정도다. 전에 산속에 있는 밭을 가꿀 때도 마찬가지였다. 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를 하셨다. 살림살이나 다른 면은 그렇지 않은데 ..

사진속일상 2020.05.04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진작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이제야 읽어본다. 가벼운 단편인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긴 장편소설이다. 분량이 5백 페이지가 넘는다. 나쓰메 소세키가 일본의 국민작가이고, 그의 대표작이 이 소설이라고 해서 기대가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난 느낌은 좀 실망이다. 장편으로 담기에는 지리해질 위험이 있는 이야기다. 라는 제목 그대로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 세상을 바라본 2년의 기록이다. 여기 등장하는 고양이는 사람의 말만 못 할 뿐 지력은 인간 이상이다. 주인공인 구샤미와 친구들이 고양이의 관심 대상이다. 고양이를 통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알 것 같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이 고양이를 통해 드러난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05년은 일본이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전력을 다하던 때였다. 그만큼 ..

읽고본느낌 2020.05.02

마장리 향나무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마장3리에 있는 향나무다. 마장리(馬場里)란 이름은 조선 연산군 때 이곳에서 말을 사육하고 군마 훈련을 시킨 데서 유래한다. 이 향나무는 조선 성종 때 공자 영정을 모신 성시영묘를 짓고 이를 기념하여 심었다고 전한다. 나무를 심은 뒤부터는 맑고 깨끗한 샘물이 솟아나왔다는데, 영험하다고 소문이 나서 마을 이름을 '샘골'로 불리기도 했다. 샘골 우물은 향나무 옆에 복원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향나무는 우람하면서 멋진 수형을 갖고 있다. 춤추듯 옆으로 뻗은 가지는 지지대에 의지하고 있지만 나무에 역동성을 더한다. 향나무 수령은 약 500년이고, 높이는 15m, 줄기 둘레는 3.4m다.

천년의나무 2020.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