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프로의 솜씨

샌. 2020. 5. 4. 10:57

 

어머니가 농사일을 놓으신지 서너 해가 되었다. 지금은 집 앞 텃밭만 가꾸신다. 한창 농사를 지을 때 어머니 별명이 '농사 9단'이었다. 동네 사람들조차 어머니한테 와서 조언을 구했다. 어머니가 작물을 키우면 다른 집에 비해 소출이 월등했다. 다른 사람이 말하길 "똑같이 농사짓는데 저 집은 왜 다를까?"라는데, 내가 볼 때 특별한 비결이 있기보다는 그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

 

고향 집에 갔더니 텃밭에 고추를 심어 놓으셨다. 일렬로 늘어선 고추가 해병대 줄보다 더 정확히 맞아 있었다. 줄을 긋고 심은 것도 아니고 대충 눈대중으로 했다는 게 이 정도다. 전에 산속에 있는 밭을 가꿀 때도 마찬가지였다. 뭘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정리를 하셨다. 살림살이나 다른 면은 그렇지 않은데 농사일은 엄청 꼼꼼하시다.

 

연세가 아흔이 되셨는데 프로의 솜씨는 죽지 않았다. 자식으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비슷한 또래 중에서는 거동을 힘들어하시는 분이 다수다. 요양원에 계시는 분도 있다. 얼마 전에는 이웃 동네에서 꽃모종을 내는데 일 좀 해 달라는 부탁이 왔다고 한다. 일당이 7만 원으로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포기했다는데, 그 이유가 다른 사람이 어떤 눈으로 볼까, 라는 걱정이 이유였다. 그만큼 어머니는 아직까지는 정정하신 편이다.

 

어머니는 허리가 아프셔서 지팡이 없이는 걷기가 힘들다. 다른 데는 괜찮다 하시지만, 자식에게 말 못하는 고통이 있을 것이다. 가끔 뵐 때마다 점점 연로해지시는 걸 느낀다. 직접 표현은 못하지만 많이 안타깝고 속상하다. "사람은 실망을 주지만, 작물은 내가 마음을 쏟은 만큼 보답한다."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이다. 자식 입장에서는 프로의 솜씨를 오래 봤으면 좋겠다. 그러나 이 기간 역시 길지 않을 것임을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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