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5

혼자 노는 즐거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더 큰 즐거움은 혼자 놀 때 찾아온다. 옛사람이 말하는 독락(獨樂)의 즐거움이다. 늙어서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누구나 말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너무 관계에 매달리면 자신에게 소홀해진다. 밖으로 향하는 재미는 더 많은 자극을 요구한다. 그 요구에 따르다가는 늘 숨이 찰 수밖에 없다. 주위의 친구보다는 내가 나의 벗이 되어야 한다. 오직 담담할 뿐이다. 노자가 말한 무미지미(無味之味)야 말로 참맛이다. 홀로 책을 읽고, 홀로 산길을 걷는다. 이보다 더한 충만이 없다. 풀, 나무, 구름, 바람이 가슴으로 들어온다. 진정으로 고독한 자는 외롭지 않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게 편안하다. 마음이 분주하지 않다. 고독을 찬양하는 문화는 사라졌다. 스마트폰은..

참살이의꿈 2015.07.21

어부 / 김종삼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거린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머얼리 노를 저어 나가서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이 되어서 중얼거리려고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고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고 - 어부 / 김종삼 새벽에 잠이 깼다. 속이 쓰리다. 날카로워진 감정의 불꽃이 화약고를 건드렸다. 폭발이 일어났다. 제기럴,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이 필요하다는 건가. 너희들에게 보이기 싫어 책상에 엎드려 속울음을 삼켰다. 어린 자식 앞에서 대성통곡하기도 했다. 세상에 대해, 사람과 희망에 대해 믿지 않기로 했다. 항복하지요. 이젠 당신에게 바칠 희생제물도 남아 있지 않아요. 나는 날마다 출렁거린다. 봄 가운데서 북풍한설을 걱정한다. 두렵다. 그리고 미안하다. 견뎌야지. 시간이..

시읽는기쁨 2011.03.30

어떤 기쁨 / 고은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했던 것 울지 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하고 있는 것 울지 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막 생각하려는 것 울지 마라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세계에서 이 세계의 어디에서 나는 수많은 나로 이루어졌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수많은 남과 남으로 이루어졌다 울지 마라 - 어떤 기쁨 / 고은 오늘 저녁 SBS의 '내 마음의 쉼표'에 고은 선생이 출연하셨다. 선생이 10대 후반 시절 6.25를 피해 선유도로 피난 가셨는데 60년이 지난 지금 그곳으로 다시 추억 여행을 하시는 내용이었다. 선생의 소년 같은 해맑은 미소와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TV를 보면서 나에게도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

시읽는기쁨 2011.02.21

그 기쁨의 순간들은 / 심호택

도대체 어디로 날아갔나 그 기쁨의 순간들은 살구철이 지난 어느 날 우거진 잎새 사이에서 얼핏! 샛노란 살구 하나 찾아냈을 때 고구마 캐낸 빈 밭에서 무심코 쟁기질 뒤따르는데 덜렁! 고구마 한 덩이 뒤집혀 나올 때 사정없이 가슴이 콩당거리던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그만큼은 아닐지라도 - 그 기쁨의 순간들은 / 심호택 신문에서 시인의 부음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밤중의 교통사고로 갑자기 운명하셨다고 한다. 시인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시인은 유년 시절의 동심을 그립도록 아름답게 묘사해 내는 솜씨가 뛰어나셨다. 특히 '그만큼 행복한 날이'는 가슴을 울리는 절창이었다.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놓고 봐라 ..

시읽는기쁨 2010.02.02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지금 이대로가 좋아라. 그냥 이대로 살고 싶어라. 해 뜨면 일어나고, 해 지면 잠자리에 드는 지금이 좋아라. TV도 컴퓨터도 없지만 대신에 자동차 소리나 문명의 소음도 없는 여기가 좋아라. 저녁이면 촛불을 켜놓고 거실에 누워 남쪽 하늘을 흘러가는 반달을 바라보는 여유와 낭만이 좋아라. 촛불은 따스한 빛이다. 달빛과 촛불은 기막힌 조화를 이루며 내 몸을 어루만진다. 그 빛과 어우러져 나신이 되어 한 판 춤이라도 추고 싶은 밤이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하루 종일 혼자 있는 날이 대부분이지만 결코 외롭지 않아라. 아무런 하는 일이 없어도 결코 심심하지 않아라. 아침, 저녁 두 시간 정도씩 바깥일을 한다. 한낮에는 뜨거워서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온 몸 가득 땀을 흘리고 들어와 찬물로 샤워를 할 ..

참살이의꿈 200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