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어떤 기쁨 / 고은

샌. 2011. 2. 21. 19:47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했던 것

울지 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생각하고 있는 것

울지 마라

 

지금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세계의 어디선가

누가 막 생각하려는 것

울지 마라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세계에서

이 세계의 어디에서

나는 수많은 나로 이루어졌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는 수많은 남과 남으로 이루어졌다

울지 마라

 

- 어떤 기쁨 / 고은

 

오늘 저녁 SBS의 '내 마음의 쉼표'에 고은 선생이 출연하셨다. 선생이 10대 후반 시절 6.25를 피해 선유도로 피난 가셨는데 60년이 지난 지금 그곳으로 다시 추억 여행을 하시는 내용이었다. 선생의 소년 같은 해맑은 미소와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TV를 보면서 나에게도 아련한 옛 추억이 떠올랐다. 지금부터 40년 전 대학생이었을 때 친구와 둘이서 선유도로 여행을 갔다. 군산항에서 몇 시간인가 배를 타고 들어가서 허름한 민박집에서 며칠인가 묵었다.TV 화면을 보니 해수욕장에 있는 돌산은 기억이 선명하다. 올라가려고 하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포기했었다. 시인은 어린 시절 그 산을 오르내리며 외로움을 달랬다고 했다. 친구는 가까이에 살지만 자주 만나지는 못한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은 소원해졌다. 그 친구와 옛날의 선유도로 다시 한 번 추억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TV를 보는 내내 들었다.

 

이시는 프로그램 마지막에 소개되었다. 섬은 외롭지만 외롭지 않다. 섬은 쓸쓸하기에 따스한 위로가 된다. 프로그램에 나온 선유도, 그 섬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 시여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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